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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_ 천국 환송
 글쓴이 : 관리자
 



평강제일교회 남선교회에는 근조봉사팀이 있다. 주로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현직에서 은퇴한 성도들이다. 서재문 담당장로, 팀장 이천수 집사, 부팀장 정양도 집사, 총무 함암 집사를 비롯하여 60-70대 성도들인 20여 명의 기존 팀원과 작년 말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40-50대 성도 10여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동’, 근조봉사팀이 근조봉사를 나갈 때 쓰는 용어이다. 불시에 발생하고 여러 인원이 급한 일정에 시간을 맞추어 봉사해야 하기 때문에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2012년 4월 넷째 주 월요일은 2012년 들어 21번째와 22번째의 ‘출동’이 있던 날이다. 장례식이 부천과 일산 두 곳에서 이루어지고 장지도 충남 서천과 경기 강화도로 나뉜다. 근조봉사팀은 9명씩 두 조로 나뉘어 출동한다. 부천의 한 병원에서 출발하여 충남 서천의 장지까지 봉사하는 조의 하루를 동행했다.

2012년 4월 23일 월요일 새벽 5시, 교회 운동장
월요일 출근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어둑어둑한 새벽, 교회 운동장으로 하나 둘 근조봉사팀원들이 집합한다. 오늘 봉사할 장례식의 천국환송예배(발인예배)는 새벽 6시 30분으로 예정되어 있다. 멀리 구리에서 오는 김윤철 집사는 집에서 새벽 3시 30분에 출발했다. 병원으로 가기 전에 다 같이 모여 아침 식사를 한다.

“천국환송예배부터 하관예배까지 쉴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미리 하게 되지요. 몸을 많이 쓰기 때문에 속이 든든해야 합니다.”(이천수 팀장)

아침 6-8시, 장례식장
장례식장에 도착한 이들은 상가 한쪽에 조용히 앉아 예배가 시작되기까지 기다린다. 검은 양복과 검은 넥타이, 하얀 장갑을 끼고서 단정하게 앉아 별 말을 하지 않는다.

“근조 봉사를 하는 동안에는 서로 잡담을 주고받거나 하지 않습니다. 상주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정덕영 집사)

발인예배가 30분 연기되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예배 시작할 때까지 거의 1시간을 이천수 팀장은 거의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상주와 절차를 의논하거나 유족을 위로한다. 7시에 예배가 시작되었다. 근조봉사팀은 장례식장까지 운구 봉사를 한다. 어느새 꽉 찬 조문객들 때문에 팀원들은 모두 자리를 양보하고 뒷자리에 서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예배가 끝나고 다시 장지로 향하는 차량까지 운구한다. 팀원들이 양쪽에서 세 명씩 여섯 명이 말없이 한마음으로 힘을 맞춘다.

“근조봉사팀원들은 서로 말없이 협력하는 데 익숙합니다. 운구하면서 서로 대화를 주고 받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쪽 더 들어~ 힘 좀 빼~ 한다면 유족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주고받는 말이 없어도 미리 연습하지 않아도 서로간에 믿음으로 함께하니 호흡이 잘 맞는 거죠.”(이천수 팀장)

오전 8시, 장지를 향해 출발
장지는 충남 서천군 기산면 두북리, 서울에서 3시간 남짓 거리이다. 환송을 받는 고인은 신화순 권사. 이승삼 목사의 모친이다. 월요일 출근시간에 맞물려 장지로 가는 차량이 도로에 갇혔다. 근조봉사팀을 태운 차량은 10인승의 SUV. 운전은 신문순 집사가 전담한다. 고인과 유족을 태운 장례버스가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바꿀 때 다른 차선에 미리 진입하여 버스의 차선 변경을 돕는 역할도 한다.
“장거리를 갈 때는 함암 집사와 신문순 집사가 교대로 운전하는데 그 외에는 대부분 신문순 집사가 혼자 운전을 합니다. 미국에서 살던 분이라 거침없이 시원하게 참 잘 하세요.”



오전 11시 30분 장지 도착 하관 준비, 12시 20분 하관예배 시작
오늘처럼 장지가 공원묘지가 아니라 선산일 경우에는 9명이 출동한다. 보통 8명이 한 조를 이루는데 선산은 입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1명 더 출동하게 된다. 오늘 팀은 기존 팀원 5명(이천수, 정덕영, 홍학표, 정인기, 신문순 집사)과 새 팀원 4명(홍창모, 이성원, 유기현, 김윤철 집사)으로 구성되었다. 움푹 파 놓은 땅에 근조팀장 이천수 집사가 들어가 하관 준비를 한다. 젊은 새 팀원들이 흙을 고른다. 두 사람이 체를 들어 양쪽으로 잡고 한 사람이 삽으로 흙을 떨어뜨려 계속 흙을 고른다. 새벽엔 춥던 날씨가 어느새 따뜻하다 못해 더워져서 금방 하얀 와이셔츠가 땀으로 젖는다.

“체까지 준비해서 흙을 정성을 다해 고르는 모습을 보고 유족들이 고마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족 중에 신앙이 없는 분들에게 우리의 정성이 닿아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우리가 근조봉사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이천수 팀장)

조심스레 하관을 하고 흙을 고르는 일에 정성을 더한다. 상주 이승삼 목사가 땀에 젖은 근조팀장의 모습을 보고 그만하면 됐다고 말렸지만 이천수 집사는 곱게 고른 흙을 관 주위에 채우는 데 여념이 없다. 드보라 성가대의 찬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시작된 하관예배는 유종훈 목사의 말씀과 축도,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 속에 끝이 났다. 유족들이 식사를 하고 가시라고 근조봉사팀원들을 잡는다. 계속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팀장, 이들은 상가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예외 없이 지켜지고 있다.
“상가에서 식사를 하다가 유족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믿지 않는 유족이 있는 경우에는 술을 권하기도 하고요. 우리는 평강제일교회를 대표해서 봉사를 하러 왔기 때문에 말이나 행동에 조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낮 1시 점심식사
유족에게 인사를 하고 장지를 나와 한참을 달려 한 식당에 근조봉사팀원끼리 따로 모였다. 아침 식사 후 거의 8시간 만에 하는 점심식사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바쁘게 달려온 하루에 잠시 짬을 낸다. 서울까지 다시 3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새벽부터 거의 말이 없던 9명의 팀원들은 식사를 하며 비로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근조봉사를 하면서 힘든 점은 없는지 물었다.

“하루 생업을 포기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렇지만 근조봉사팀원의 봉사가 전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저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하신 팀장님이나 선배 집사님들을 보며 은혜도 많이 받고 있고요. 잘 배우고 있습니다.”(유기현 집사)

“자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를 다 봉사에 할애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출동할 때마다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희생하며 봉사하는 것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이성원 집사)

“경사진 곳을 1km 정도 관을 메고 올라갈 때도 있었죠. 그런 곳은 여러 번 쉬면서 올라갑니다. 여섯 사람이 관을 들게 되는데 서로의 호흡이 중요합니다.”
(정덕영 집사)

이천수 팀장은 강화 쪽으로 간 팀과 계속 전화를 주고 받는다. 장지가 강화도라서 배까지 타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 팀도 점심식사 중이었다. 교회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주고 받는다.
근조봉사팀에는 70세가 넘은 팀원이 6명이나 된다(이천수, 김봉길, 정덕영, 조동석, 오재후, 이평웅 집사).
20년 넘게 봉사한 성도들이다. 정인기, 홍학표 집사도 20년 넘게 봉사했다.

“제주도 빼고는 다 가봤습니다. 부산에 비행기 타고도 가봤고, 전남 고흥도 갔었습니다. 고흥 반도는 너무 멀어서 전날 가서 잤었습니다.”(정덕영 집사)



근조봉사팀에 등록한 인원은 60명 가까이 되지만 실제 출동할 수 있는 인원은 30명 정도이다. 일의 특성상 남선교회 젊은 회원들의 참여가 요구된다. 근조봉사팀의 자랑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근조봉사팀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자랑입니다. 팀원끼리 끈끈한 친목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젊은 집사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유기현 집사)

“이 일은 마음이 맞고 손발이 맞아야 할 수 있습니다. 관을 드는 것에서부터 걸음을 옮기는 것도 서로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이천수 팀장)

“처음 오는 분들도 몇 번 같이 하다 보면 몸으로 익히게 됩니다. 서로 말은 안 하지만 눈치껏 행동을 맞추게 됩니다. 매뉴얼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홍학표 집사)

“말하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알게 되고 시키지 않아도 솔선해서 일을 하게 하는 근조봉사팀입니다. 그래서 많이 배우고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정인기 집사)

오후 3시 고속도로 휴게소
서울 가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서해대교 밑에 있는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차에서 나와 스트레칭을 하며 담소를 나눈다.
“저는 근조봉사를 받았던 경험에 은혜를 받아서 근조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5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제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집사람과 아이들만 교회를 다니고 있었죠. 그때 오늘 강화에 가신 김봉길 집사님이 오셨는데 근조봉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이후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근조봉사를 하고 싶었으나 마음뿐 막상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가 작년에 원로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특별히 권면하시고 남선교회에서도 계속 팀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해서 마침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11월에 근조봉사를 시작했는데 오늘이 아홉 번째 출동입니다.”(김윤철 집사)

“제 나이가 70이 넘었는데도 이 일을 계속 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셔서 봉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두번 째는 전도가 목적이구요. 세번 째는 믿는 사람 손으로 고인을 운구하고 하관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성을 다해 계속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니까요.”(이천수 팀장)

오후 4시 30분 교회 도착, 강화에 나갔던 팀과 만나다
강화에 갔던 팀원들이 먼저 교회에 도착해 있다. 서로의 힘든 하루를 나누고 격려하며 수고를 칭찬한다.
오늘도 무사히 모든 순간에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집으로 향하는 근조봉사팀원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처음에는 남선교회 근조봉사팀이었는데요. 하다 보니 교회 전체의 근조봉사팀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커지다 보니 출동 횟수가 많아져서 1년에 50회가 넘습니다. 직업으로 하시는 게 아니라 따로 생업이 있는 집사님들께서 봉사를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발인일 기준으로 이틀 전에는 연락해 주셔야 근조봉사를 나갈 수 있습니다. 출동하는 기준은 하관예배를 우리 교회 목사님이 집례하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근조봉사팀원들은 고인의 육신을 새로운 집에 모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일하고 계십니다.
믿지 않던 유족들이 처음에는 반대하다가도 근조봉사팀을 보고서 더 감동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 근조봉사팀원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박길수 남선교회 부총무)

글_ 서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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