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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글쓴이 : 관리자
 

하나님이 함께하신 대한민국 현대사 탐방 4



3·1 운동 정신이 숨 쉬는 역사 교과서


3·1 운동 93주년을 맞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우다 투옥되어, 잔인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은 독립 운동가들이 스러져 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초등부 부회장인 이지선 어린이와 함께 찾아갔다.
오전 10시.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중, 고등학생, 초등학생, 유치원생까지 속속 모여들었다. 독립 운동가들을 가뒀던 옥사의 외벽에는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다. “와, 태극기다.” 삼삼오오 대형 태극기 앞에 모여 기념 촬영들을 한다. 자유인으로서 누리는 행복을 새삼 감사하게 하는 태극기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 침략의 저항이 거세지는 것을 인식한 일제가 한국민을 탄압하던 중, 수감시설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경성 감옥’이라는 이름으로 1908년 10월 21일에 만든 곳이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 독립 운동가들이 늘면서 수감 인원이 늘자 마포 공덕동에 새로운 감옥을 신축해 그곳을 ‘경성 감옥’이라 칭하고 이곳은 ‘서대문 감옥’으로 변경된다. 서대문형무소의 건물을 대대적으로 신축한 계기가 바로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 “대한독립 만세!”를 울려 퍼지게 한 ‘3·1 운동’이다.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5천여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역사적인 독립선언문 낭독이 있었고, 같은 시간 태화관에서는 독립선언서를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29인이 참석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같은 날 의주, 선천, 평양, 진남포, 안주, 원산, 함흥 등지에서도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온 천지에 메아리 쳐 이날부터 전국 211개 군에서 1,542차례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세 시위 운동으로 수감자가 늘어나자 서대문형무소는 수용인원 3,000여 명의 대규모 감옥으로 운영된다.

민족의 독립 염원이 고종황제 서거로 3.1운동 자극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 국민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이유는 뭘까? 물론 근본적인 배경은 민족독립의 염원이다.
“1919년 3월 3일은 일본에 의해 독살당한 조선왕조 마지막 27대 왕인 고종황제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었어요. 그래서 전국에서 나라 잃은 백성들의 통곡이 더 컸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국장을 보기 위해 서울에 모였다고 배웠어요.” (이지선 학생)
민족 대표들은 3월 3일 고종의 국장을 나라 잃은 슬픔을 독립운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운동을 주도한 것은 기독교인이었고,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기독교인은 16명, 거사를 준비한 48명 중 기독교인은 24명이다.
많은 국민들이 3·1 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일제의 잔인한 고문에 신음했다. 특히 9옥사에는 독립 운동가들이 집중 수감돼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외부인과 접촉을 막기 위해 용변마저도 바깥으로 직접 내놓게 따로 지어진 9옥사와 유관순 열사를 따로 수감하기 위해 마련 된 유관순 지하 감옥도 눈에 띄었다.

지하에 있는 고문실로 내려갔다. 거꾸로 매달려 물고문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못이 박힌 상자 안에 사람을 넣어 흔들어 찔리는 고통을 당하게 하는 상자 고문, 한 사람이 들어가 서면 옴싹달싹 할 수 없게 만든 벽장 고문, 전기 고문 등이 당시의 참상을 보여 줬다. 하지만 독립 운동가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정신은 그 숱한 고문도 막을 수 없었다.
유관순 열사는 3·1 운동이 일어난 지 1주년이 되는 1920년에도 옥중 만세 시위를 주도해 감옥 바깥에서도 시위가 퍼지게 했다.
“수감방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자신이 사형장으로 간다는 걸 알았대요.” (이지선 학생)
옥사에서 사형장까지의 길을 안내한 이지선 학생은 지난해 사무엘 교회학교에서 이곳을 탐방했을 때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기억해냈다. 두 손이 묶인 채 사형장으로 향하는 독립 운동가는 사형장 바깥의 나무를 붙들고 울었다고 한다. ‘통곡의 미루나무’로 불리는 이 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심었다. 애국지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이 나무를 붙잡고 토해냈다. 사형장 안에도 같은 날 심은 똑 같은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바깥에 심은 나무에 비해 훨씬 작아 사형수들의 안타까움을 온몸으로 받아낸 듯 했다.


- ‘통곡의 미루나무’로 불리는 이 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심었다. 애국지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이 나무를 붙잡고 토해냈다.

3·1 운동 이후 한반도 공산화운동 전개
3·1 독립운동 후 국민들의 원통한 마음을 파고 든 것이 공산주의 사상이었다. 지리적 여건상 미국이나 유럽보다 러시아의 도움이 현실적일 것이라는 기대로 레닌의 ‘공산혁명정권’에 의지한 독립 운동가들도 많았다. 안타깝게도 초기 독립 운동가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 채 독립의 수단으로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게 됐다. 이 사상은 일반인들에게도 급격하게 퍼지면서 해방 전까지 전국 곳곳으로 확산됐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나라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명기 32:7).
나라를 사랑하는 민족정신과 애국정신이 남아 있는 서대문형무소는 과거를 묻는 현재의 세대에게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선조들이 피를 흘려가며 지켜낸 이 나라의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해 공산주의 사상이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글_참평안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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