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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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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가보 참평안 (2010년 7월호)
 글쓴이 : 관리자
 

우리집 가보 참평안  

가장 오래 된 ‘참평안’을 찾는다는 광고가 예배시간에 나간 후 '大聲', '열매', '등불’ 등 ‘참평안'의 초기 제호를 달고 있는 교회소식지들이 속속 도착했다. 수십 년 된 소식지들을 가져 온 성도들은 한결같이 신앙의 동반자였던 ‘참평안’을‘가보’처럼 여겨왔다고 말했다.

제가 교회에 다닌 지는 벌써 41년이 됐죠. 박정순 집사님의 전도로 본격적인 믿음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영락교회 근처에 살면서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음악처럼 감미로웠고 참으로 마음도 평안했죠. 그러다가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면서 하루 종일 성경공부를 했죠. 그 후‘대성’지를 통해 성경공부를 했어요. 교회에 아이를 데리고 오면 원로목사님이 봐 주시기도 했고요.

‘대성’지를 받을 때 그 말씀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까워서 차곡차곡 쌓아 놓았어요. 장사를 시작한 지 33년이 됐는데,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장사 준비를 하다보면 심신이 많이 피곤하거든요.

그래도 이 말씀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버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었다고 자부하지는 못하지만 영생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빨리 전해서 구원해야 된다는 전도사님들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귓가에서 맴돌아요.

서울에 올라와서 결혼한 후 신앙생활을 할 수 없어 갈등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당시 연희동에서 신림동까지 차비를 아끼려고 버스 한 번만 타고 걸어서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어요. 당시는 “알아야 산다!”고 원로목사님께서 강조하셨고 한 사람을 만 명 앞에 세울 수 있도록 공부시키셨거든요. 그래서 10년 동안 친정도 안 가고 주일을 성수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먼 곳까지 교회를 다니냐?”했지만, 말씀을 따라와서 생명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거죠. 그렇게 힘들게 신앙생활을 할 때 받은 ‘대성’지는 정말 소중했어요.
 ‘성화산의 밤비’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 원로목사님의 기사도 실려 있죠. 그때 권두언으로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원로목사님께서 글을 쓰셨는데, 우리에게 “참 평안이 있냐?”는 질문을 던지신 겁니다. 당시에는 권두언을 읽을 때마다 문장에 빠져들었어요. 참 평안의 의미를 매번 되새기게 해 줬습니다.


1985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 올라왔을 때 저는 다른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생활을 했죠. 그러다 어느 날 오빠(최승호 장로)가 “집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는데 합심해서 집안을 전도하자”며 3개월만 우리 교회에 다니자며 저를 설득했어요. 그래서 서울에 올라온 지 7~8개월 후 교회에 등록하고 미스바 성가대 활동을 하게됐는데 악보와 성가대 가운을 정리하면서 ‘참평안’ 창간호를 만나게 된 거에요.
얼마나 신기하고 또 감사한지. 만들어진 지 5년이 지난 후 만나게 된 창간호가 얼마나 신기해 보였겠어요. 그래서 가보로 남기고 싶어서 고이고이 모았죠. 하지만, 오래된‘참평안’을 찾는다는 광고를 듣고‘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드는 데 쓰임을 받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제출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올 4월 이사를 하면서 책장 정리를 하다가 “가보 여기 있네?”하며 잘 보관해 두고 있었거든요.


저는 교회의 소식지를 스크랩북에 일일이 보관했습니다. 집에 자료가 많아 잘 정리가 안돼 박스에 넣고 이사를 다닐 때 통째로 들고 다니곤 했죠.
제가 이렇게 일일이 스크랩을 하며 보관하는 이유는 강단에서 주시는 말씀을 일일이, 그리고 정확히 기록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죠. 예배를 드릴 때 노트정리를 하지만 그대로 기록되기보다는 내가 받은 은혜대로 기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정확히 그때의 말씀을 다시 음미하기가 어렵게 되거든요.
어머니께서는 1972년부터 우리 교회에 다니셨는데, 저는 초등학생이었고 어머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온 것이죠. 그러다가 군대에 갔을 때 누나와 성가대를 통해 받은 ‘참평안’은 참 귀했습니다. 군대에 있다 보면 집 생각도 나고 말씀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는데, 그런 것들을 해결해 주는 창구 역할을 했죠. 지금 다시 읽어 보니 권두언의 말씀하나 하나가 정말 주옥 같았고 또 장안산 기도회에 갔던 글을 읽어 보니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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