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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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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든지 뜨겁든지 하라_ 김동운 장로 (2010년 11월호)
 글쓴이 : 관리자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김동운 장로가 장로로 장립 받았던 2009년 8월 30일 했던 말이다. 처음 각오를 실천하듯, 김동운 장로는 아침 7시 반부터 모리아 성전을 청소하며 주일을 맞이한다. 영아부 담당 장로, 24대 교구 구역장, 장로회 서기, 예배국 봉사, 그리고 에녹성가대 테너 파트장을 맡고 있다. 바쁘다는 표현보다는 “맡겨주심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김동운 장로를 만나보았다.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나요?
저는 원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고 아내만 교회에 다녔습니다. 대한민국은‘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아내가 교회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교회에 가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가면 되지 않냐”고 시작한 말다툼은 부부간에 갈등을 일으켰고 심각하게 이혼까지 고민해 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 어떤 계기로 교회에 나오게 되셨나요?
교회생활로 인해 갈등이 잦아지자 하루는 ‘그래, 그러면 그 교회 나도 한번 나가보자. 내가 들어보고 아니면 아닌 거다.’라고 생각하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성경공부가 어렵지 않았나요?
성경공부를 하면 할수록 말씀이 참 재미있었어요. 1대지, 2대지로 나누어서 설명해 주시니까 논리적이었어요. 왜 믿어야 되는지 막연하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가 명쾌했어요. 궁금한 것이 생기면 평일에도 교회에 와서 목사님께 질문했어요. 집이 일산이라 2시간 넘게 걸렸지만 하나라도 알고 가면 큰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말씀에 빠져들면서 원로목사님 말씀
테이프를 녹취하기도 했어요. 하루에 10시간 이상 녹취하며 듣다보니까 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있는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게 바로 구속사(救贖史)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신앙생활 하신 건가요?
아니요. 한 3년 정도 교회에 안 나온 적이 있었어요. 남선교회 평강마트 등 이곳저곳에서 열심히 봉사하다가 사람 때문에 시험이 들었어요. 인간적인 생각이 드는 거예요. 혹시 내가 잘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내가 왜 사람을 보고 이러고 있을까. 말씀만 붙잡자. 다시 성경책만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나오
게 되었습니다.

장로 임직은 언제 받으셨나요?
2009년 8월에 받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께 전화가 왔길래 ‘내가 뭐 잘못했나?’했죠. 그런데 장로 후보가 됐으니 준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처음엔 “전 그거 자격 없는데요”라고 거절했지만, 자격은 하나님이 판단하신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장로 임직을 준비했습니다.

장로 임직을 받고 나서 기분이 어떠셨어요?
교회에 다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장로가 되었기 때문에 장로라는 명찰을 달고 다니기도 부끄럽고 쥐구멍에 숨고 싶었어요. 스스로 돌아온 탕자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회개하면 날 받아주시겠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훌륭하신 분들이 더 많은데, 저 때문에 다른 분들이 시험 들지 않게 기도했어요.

직분을 받고 달라진 점은 있다면요?
가끔씩 제가 잘 모르는 분들이 인사를 건네주십니다. 그럴 때마다 성도님들이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해서 덕(德)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하계 특별 대성회 기간 중 어머님이 소천(召天)하셨을 때 장례절차를 연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8월 2일, 하계 특별 대성회가 시작하는 날 어머님이 소천 하셨습니다. 장례는 치러야 하는데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았죠. 우선 저부터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푸시는 대성회에 꼭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더구나 대성회 기간 중 특별한 행사도 있었고요. 그리고 대성회 기간 중 장례를 치르게 되면 저희 가족뿐 아니라 목사님들, 장례를 도와주셔야 할 성
도님들도 한꺼번에 대성회 참석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또 많은 성도들이 기도하고 환송해 주시는 가운데 어머님을 천국으로 보내드리고 싶은데, 대성회 기간 중에는 많은 성도들이 오실 수 없는 것도 마음에 걸렸어요. 인간적으로 힘든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집사람에게 “당신이 일단 병원에 가있어라. 나는 대성회 참석했다가 수요일에는 가마.”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친척들한테 장례를 연기하자고 말하기는 힘들었어요. 제가 차남이지만 사실상 장남 역할을 해왔어요. 그렇다고 해도 친척들한테 그런 얘기를 꺼내긴 어려웠죠. 그래서 일단 친척들의 양해 없이 병원에 문상을 목요일부터 받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친척들은 왜 그렇게 하는지 영문을 몰랐어요. 제가 그동안 장손노릇을 해왔기에‘뭔가 있겠구나.’하고 아무 얘기 안하고 일단 따라주었어요. 제가 대성회에 참석했더니 어머님 소천 소식을 들었던 성도님들이 “당연히 안 올 줄 알았는데 당신 왜 여기 있느냐.”면서 놀라셨죠.

그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차가우면 차갑고 뜨거우면 뜨겁지, 미지근하게 신앙생활 하지 말라는 말씀 있잖아요? 말씀을 좇으면 좇고, 아니면 아니지. 어떻게 타협을 해요. 하나는 선택해야 되잖아요. ‘나는 이것밖에 선택할 방법이 없다. 이것밖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장례식에서도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드리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신 거군요.
‘장례식’이란 말에 왜 ‘예(禮)’자가 들어가겠습니까, 바로 예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도 없이 우리끼리 하는 것은 ‘예(禮)’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믿는 집안에서 그런 걸 생략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가족들 반응이 어땠습니까?
목요일부터 문상을 받는다고 하니까, 동생이 “형이 장로 되더니 정신이 이상해졌다.”며 이해가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동생에게 “언젠가 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이해하게 될 거다. 협조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냉랭했죠. 그런데 천국 환송예배 때 드보라 성가대가 오셔서 찬송해주시고 장지에도 함께 와주셨어요. 다른 가족들이 그런 걸 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 이렇게격식있게진행되는장례는처음본다.’고생각하고는마음이누그러졌어요. 그리고 나중에 “형, 수고했어.”라고 전화가 왔어요.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보내면서 예‘(禮)’를 갖추기 위해 그런 분위기에서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마지막엔 이해했죠.

가족 전도도 하고 계신가요?
천천히 자연스럽게 과정을 거치면서 하려고 해요. 가족 전도가 제일 어려워요. 서로의 모습을 다 알잖아요. 안 믿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은 완벽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안 그렇잖아요. 현재 기도중이고 기회가 주어지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거예요. 힘들 때마다 손을 잡아주다 보면 되겠죠.

성도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직분은 피하지 말고 받았으면 합니다. 저는 에녹성가대 테너 파트장을 맡고 있지만 노래를 잘해서 맡은 게 아니라 교회에 나오려고 맡았습니다. 친구들도 만나고 세상에서 약속이 많지만 직분 있기 때문에 수요예배에 빠지지 않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직분을 받으면 교회생활을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효(孝)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신앙인의 효를 실천하고, 맡겨주신 직분을 통해 헌신 봉사하는 김동운 장로의 모습에서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글_ 권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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