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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설계하신 나의 인생_박정우 장로 (2010년 9월호)
 글쓴이 : 관리자
 

하나님이 설계하신 나의 인생
박정우 장로

한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디자인 됐을까?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숨어 있고, 그 형상은 삶의 순간 순간 드러나기 마련이다. 때마다 들려오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한다면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임을 증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몸은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어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신앙고백으로 드러난다.



전세 낸 어선으로 월남하다
동한당 한의원을 경영하는 박정우 장로는 부인 모말례 권사보다 10년 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대로 하나님에게도 속을 다 보여 드리지 않으려 했다. 결혼 5년째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한 부인이 평일에도 교회에 가고, 주일에도 예배를 유별나게 두 번씩 드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식사 기도를 할 때, 애쓰는 남편에게는 감사하지 않으면서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도 못마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삶의 최대 위기였던 해방 직전, 가족들과 함께 38선을 건너올 때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이뤄진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한의원을 경영하면서는 재물을 가난하고 힘든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은 하늘나라의 좋은 자리를 예약했다고 생각했다.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가 시작되면서 아버님이 할아버님이 계신 전북 김제로 월남할 것을 결심하고 어선을 전세 내서 내려왔죠. 북방한계선에서는 인민군 경비대가, 남방한계선에서는 국방군 경비대가 검문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붙들려 다시 돌아갔지만 우리는 무사히 묵호항에 도착했습니다. 나중에야 하나님의 은혜로 대한민국의 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울로 올라올 때는 건어물을 실어 나르는 트럭 2대에 온 가족이 나눠 탔다. 한밤중에 대관령을 넘어올 때는 깊은 산속에 사는 호랑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서울 남산 입구 피난민 수용소에서 주먹밥을 먹으며 2주간을 지내다 결국 할아버지가 사시는 김제에서 성장하던 중 초등학교 5학년 때 6·25전쟁이 발발한다.

말씀의 깊이를 깨닫고교회를 옮기다
“6·25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에 목요 구국예배는 빠지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도 아닌 부모와 형제에게 사상의 차이 때문에 총부리를 겨눈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박정우 장로는 신앙이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성탄절이면 문 앞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등 새벽송을 집 앞에서 불러줬던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선하다. 그때 그 찬송을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단다. 마침내 평강제일교회에 등록한 것은 1990년 추수감사주일. 먼저 1년쯤 다녔던 다른 교회의 성도 6명과 함께 등록했다. 그때부터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수요예배, 목요 구국예배, 새벽예배를 꼬박 3년 동안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부인 모말례 권사는 박 장로가 교회에 등록할 때까지 매일아침 금식기도를 드렸다. 새해만 되면 오로지 ‘남편이 예수님 믿어 구원얻게 해달라.’는 기도 제목 하나만 써서 교회에 제출했다. 박 장로는 등록 전, 홍순분 전도사를 통해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이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됐다. 말씀의 세계를 깨달아 가는 기쁨을 누리면서 말씀이라면 그저 좋아지기 시작했다. 같은 교회 다니던 동료들이 왜 교회를 옮기려고 하느냐며 2시간 동안 성경을 토론했는데, 오히려 그분들이 성경을 올바르고 깊이 있게 가르쳐 주는 교회로 같이 옮겨야겠다며 함께 등록하게 됐다. “아내가 ‘12년 동안 믿었던 것이 홍 전도사님을 통해 2시간 배운 성경공부 안에서 모두 정리가 됐다. 말씀의 깊이가 다르다.’고 하더군요. 저도 성경공부를 하면서 교회를 옮길 때가 됐다는 판단을 하게 됐습니다.” 1993년 교회가 오류동 성전으로 옮겨 오면서 박정우 장로도 서초동에서 교회 앞으로 집을 옮겼다. “성전 가까이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제일 큰 복이고 또 마지막 때 살 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결단을 통해 받은 말씀은 뿌리를 내려 쑥쑥 신앙으로 성장해갔고 평강제일교회에 등록한 지 3년 만에 장로의 직분을 허락받았다. 모리아성전이 봉헌되는 1993년 11월 7일에 장로 장립을 받아 ‘모리아 장로’라는 별칭도 얻었다. 몇년이 지난 후에는 남선교회 총회장 직분을 감당했지만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뿐이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동참하다
지금은 소년부 담당 장로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박정우 장로. 성탄절이면 들었던 아이들의 새벽송이 가슴을 울렸던 기억을 통해 어렸을 때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귀한 선물인지 안다. 그래서 어린이들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와 사무엘 스트링스 등 아이들의 신앙이 성장하는 곳에는 항상 기도로 동참한다. 형편이 어려운 신학생 2명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교역자가 되도록 뒷받침했고 지금도 2명을 더 후원하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헌신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수십년간 장애인과 독거노인들을 무료로 진료해 서울시장과 구로구청장 표창을 받았다. 다른 교회 교역자들도 무료 진료하다 보니 구속사 시리즈와 ‘참평안’을 전할 기회도 많아졌다. “신앙 생활 하기 전에는 남을 위해 수고하고 선행을 베푼 저는 당연히 천국에 갈 것이라고 자신했었어요. 이제 깨닫고 보니 저는 선행을 했을 뿐이지 천국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게 됨을 알았습니다.”
이런 박정우 장로의 신앙을 이제 ‘구속사 시리즈’가 더 단단히 다지고 있다. “평강제일교회에 와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에녹이 변화받아 영생의 세계에 들어간 것처럼 능력의 말씀을 통해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읽는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을 믿지 못하는 불쌍한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구속사 시리즈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나를 위해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니 이 책을 전하지 않을 수 없지요.”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믿으며 그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져 왔다. 자신 안에 심어져있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박정우 장로. 그의 삶이 우리의 신앙에 좋은 본이 된다.

글_ 참평안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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