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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herstory "위대한 유산은 역시 신앙 뿐이예요" 이성자 권사 (2009년 1월호)
 글쓴이 : 관리자
 

"위대한 유산은 역시 신앙 뿐이예요"
이성자 권사


요즘 주가 하락으로 떠오르는 단어는 ‘증여’다. 기업주가 소유한 주식이 호가를 칠 때는 이익을 봐서 좋았지만, 증여를 하고 싶어도 나라에 내는 세금이 아까워 주저했다는 것. 그래서 주가가 바닥을 쳤을 때 ‘기회는 이때다’며 역발상의 법칙으로 열심히 변칙상속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앙인들은 다르다. 신앙인들은 고난을 통과하며 기도의 시간을 쌓고 또 쌓아 말씀의 힘으로 이겨낸 과거의 값진 시간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최고로 감사한 시간, 그리고 가장 소중하게 품고 지내 온 ‘신앙’을 대물림해주고 싶어 한다. 2008년 까지 지난 5년 동안 권사회 회장직을 맡아 온 이성자 권사 또한 그랬다. 인터뷰 중간 중간 감격의 기쁨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거린 이성자 권사는 모든 것이 감사한 것 뿐이라고 한다.

신앙의 첫발은 어떻게 딛게 되었습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신앙생활하시는 것을 보고 자랐구요. 초등학생 때는 새벽기도도 열심히 다녔어요. 당시 가고 싶은 중학교가 있어서 열심히 새벽기도를 다녔는데, 그만 낙방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2차 지원으로 들어간 학교가 기독교학교였는데, 그렇게 이끌어주신 것도 하나님이시죠. 그 이후로 중고등학교, 대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교회 생활을 아주 열심히 했어요.

가정의 신앙이야기도 해주세요.
외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입니다. 외할아버지가 어느날 많이 편찮으셔서 동네에서 굿을 하는 사람을 불러 준비를 하게 됐는데, 굿잡이가 준비한 고기덩어리를 보고는 “다시 준비해라.” 하는 거예요. 때가 돼 그랬는지 화가 난 외할아버지는 광에 있던 귀신단지를 모두 깨부수고 “섬길수록 더 섬기라고 한다.”며 “귀신필요 없다!”고 선언하셨다고 해요.
그 이후 외할아버지는 온 가족을 이끌고 바로 교회로 출석하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피난길에도 꼭 예배를 드릴 정도로 신앙을 지킨 분이셨어요. 아버지는 교회 청년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는데, 외할아버지가 그 부분이 마음에 들어 어머니와 결혼시키셨죠. 증조 외할머니때부터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셨고, 지나가는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모셔다 정성껏 상을 차려서 대접하셨다고 해요. 불쌍한 사람들을 많이 도우셨어요. 그런데, 6.25 전쟁 이후 사업 때문에 부모님이 교회를 등지게 되셨고 이후 저희집도 많이 어려워졌죠.

신앙생활을 중단한 때도 있었네요?
6.25 전쟁 때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이 폭격을 당했어요. 당시 부모님은 사업이 잘되다 보니 교회를 멀리했었는데, 그 이후로 집안은 계속 어려워졌죠. 대학때 등록금도 없어 너무 힘이 들었고, 등록금을 어떤 분이 도와주셔도 차비가 없어 못 다닐 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대학교 2학년 때 꽤 유명한 목사님이 있는 큰 교회에 다녔는데 그 교회에서 목사님과 장로님 간의 갈등으로 교회가 분열 되는 것을 보게 됐죠. 제 사정도 어려운데, 교회에서 그런 모습까지 보게돼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어 ‘교회가 진정 주님의 사랑이 있는 곳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교회 생활을 접게 됐어요.

그렇다면 신앙생활은 어떻게 다시 시작하게되셨나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너무 힘이 들어 울면서 기도를했죠. 그런데 “너는 많은 후손의 어미다. 나약한 후손의 어미가 될 것이냐, 강하고 담대한 후손의 어미가 될것이냐?”는 음성이 들렸어요. 결혼 후 미국정부, UN, 아시아재단, 학교 등을 통해 하나님이 장학금을 주셨어요.
6개월 후에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서 공부를 마쳤죠. 300페이지가 넘는 박사학위 논문을 손으로 정리해서 일일이 만들고 공부를 하고 돌아왔는데, 만족감이 없는 거예요. 남편은 대학 교수 자리가 보장 된 상태였고 제 공부도 마쳤죠. 남들이 보기에는 뭐 부족한 것이 있었겠어요. 친정어머니가 돌봐주셨던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낳은 큰 달 경아와 공부하면서 낳은 둘째 딸 영아를 함께 돌보면서 아웅다웅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세상에서 노력한 것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더라구요. 어차피 무덤으로 향해 가는 인생인데 70세, 80세 돼서 죽느니 빨리 가는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했었죠. 몸은 바위덩어리 같고 마음은 병들어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때 친정어머니는 제가 미국으로 떠난지 1년 만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교회에서 정성들여 치러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셨거든요. 그런데 제 상태가 안 좋으니까 새벽기도 다니는 것, 집에서 찬송을 부르는 것도 듣기 싫어 약솜으로 귀를 틀어막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어머니 친구분이 ‘부흥회’를 소개해주셨습니다. 몸과 마음이 병이 들어 소화도 되지 않고 우울하던 제가 그 때 ‘감사’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죠. 한번도 감사가 없던 ‘나’를 이렇게 인도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했던지. 부흥회를 갈 때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행복한 여자’가 돼 날아갈 것 같았어요. 부흥회에 열심히 다닐 수 있는 다리를 주신 것도 감사해서 거리가 멀어도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다녔죠.


그러면 평강제일교회에는 어떻게 나오게 되셨나요?
부흥회에서 성령체험을 받고 얻은 기쁨은 잠시더라구요. 6개월 정도 지나고 나서‘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는 말씀 좋은 곳이 없나 찾게 됐습니다.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교회 등 말씀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곳은 모두 찾아다녔죠. 하지만 여전히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옆집에 사는 박봉수 권사의 어머니인 박순옥 여사가 우리 어머니에게 “말씀이 너무 좋아!”하며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나는 거예요.
그 때부터 “기어이 찾고야 말리라”는 생각으로 새벽부터 신림동 꼭대기에 올라가서 교회라는 교회는 다 뒤지며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드디어 일석교회(현 평강제일교회)를 찾았는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요 구국집회를 한 달에 1주일씩 하는 사경회에 참석하게 됐죠.
다른 교회에서는 노아방주 제작 기간을 120년이라고 하는데, 성경을 통해서 100년도 채 안된다고 정확하게 알려주는데 믿음이 가서 순복음교회에 다니다가 옮기게 됐습니다.

권사님같은 엘리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을것 같은데요?
당시 제가 순복음 지교회 고등부 부장을 했어요. 일석교회 말씀이 너무 좋아서 매주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렸죠. 그렇게 말씀을 듣고 고등부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1년 동안 학생이 3배로 불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중생활(?)을 3년 간 했을까요, 마음도 편치 않았는데 어떤 분은 “종이에 쓴 게 등록인가요? 열심히 다니는게 등록이죠!”라는 말로 위로를 해주기도 하셨죠. 그러다가 평강제일교회의 어느 전도사님이 “본교회에 충성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때 주일 예배는 순복음교회에서 드렸으니까 어떻게 보면 저에게 본 교회는 순복음교회인건데, ‘아, 이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에 순복음교회생활을 접고 1977년 12월에 등록해 정식교인이 됐습니다.

이성자 권사는 새벽부터 신림동을 이 잡듯 뒤져 ‘일석교회’를 찾은 날 저녁 꿈을 꿨다고 한다. 하늘이 열려 환한 밝은 빛이 집안 구석구석까지 비춰주시는 꿈을…. 이성자 권사는 빛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집으로 찾아와 가정을 구원해주시는 역사로 응답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본격적인 교회 활동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3년 동안 등록하지 않고 성경공부만 하다가 1977년 12월 등록했죠. 이듬해 1월 바로 여선교회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여운초 목사님을 모시고 성경공부를 하러다녔는데 너무 기뻐서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았어요. 날아다닐 것 같다는 말이 바로 이럴 때 쓰이는거겠죠. 그 때 여목사님이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자식이 밖에 나가있으면 부모는 저녁 늦게까지 가슴이 조여 잠을 못 이룬다면서 전도의 중요성도 가르쳐주셨죠. 임학영 권사(정원식 전 총리 사모님)께서 여선교회 총회장 하실 때는 임원으로 같이 일했구요. 여선교회 세미나로 외부저명 인사들 모시고 행사를 치루었던 일 도 잊을 수없는 추억으로 남습니다.

장안산 구국기도회, 지리산 산상구국기도회도 천여 명이 넘는 성도들이 1년에 봄, 가을 대형버스를 대절해서 열심히 다녔죠.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군대가 세상을 향해 가는 행진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감동으로 느껴지네요.


교회 생활 중 잊을 수 없는 일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미국 및 동남아 지교회를 방문 찬양 하며 그곳 성도들과 은혜스런 교제를 나눴죠. 해외지교회 성도들에게 극진하게 대접받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믿음의 형제를 만나니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어요. 특히 1992년도 LA 폭동 사건 때 한·흑 친선화합 음악회에 LA 시장 초청으로 LA 시청에서 합창 했던 일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감동입니다. 또 한 번은 ‘말씀 공부를 이제 그만해야지…’생각하고 자는데, 글쎄 꿈에서 전쟁 중에 총알이 없는 꿈을 꾸게 된 거예요. 우리의 생활이 영적 전쟁터잖아요. 기도는 물론이고 성경도 읽지 않고 공부도 안하니 우리에게 총알이 있을리 있겠어요. 하나님이 또 그렇게 깨닫게 해주셔서 말씀공부를 할 때 꾀부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죠. 제가 평강제일교회를 찾아온지도, 아니 하나님께서 불러주신지도 35년이 되네요. 되돌아보면 모두 감사하고 감격스럽지만 2007년도 ‘세계선교 연합대성회’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여주평강제일교회 대성전에서 수만 명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 4,000명의 성가대와 세계 국내외 지교회 150여 개국의 대표들이 깃대를 높이 들고 입장할 때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동안 교회가 수많은 오해를 받으며, 핍박과 많은 고난 속에서도, 피눈물나는 원로목사님의 기도와, 구원역사를 이루시고자하는 뜨거운 열정과, 묵묵히 순종하며 뜻을 같이하여 눈물뿌리며 기도하셨던 많은 교역자님들의 수고와, 그리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며,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며 말없이 따라왔던 많은 성도님들의 모습이 떠올라, 정말 많은 눈물이 나더라구요.

더욱이 이성자 권사는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주었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편이 되어 주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주시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아 더욱 감격스러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앞으로의 기도제목을 말씀해 주세요.
<창세기의 족보>와 <잊어버렸던 만남>을 비롯해 계속 출간 될 ‘구속사 시리즈’가 전 세계로 퍼져 읽는 자 마다 큰 은혜를 받아 구원역사를 이뤄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동안 많은 기도를 응답해주셨어요. 아들 주섭이도 주시고, 이렇게 받은 모든 것의 은혜가 외증조할머니의 베푸심과 외할아버지의 기도로 터를 닦아 이뤄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 모두 원하는 공부를 하고 또 하나님 안에서 말씀으로 순종하는 가정을 꾸려가고 있구요. 고린도전서 15장 51절 이하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개인과 가정과 모든 권사님들과 성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남편 임강원 서울대학교 교수(앞줄 오른쪽 끝)는 환경대학원장 대한교통학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성자 권사는 교회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1990년대는 교회적으로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더욱 부흥이 많이 됐다는 것을 강조했다.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 그리고 사람이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이 역사할 때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람의 나이를 계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떡국 한 그릇이 한 살로 계산되는 우스게 나이계산법이 아닌 남들과 똑같이 1년 365일 8760시간을 해 아래에서 산다면 한 살을 더 계산한다. 하지만 우리의 영적 나이, 신앙 나이는 어떻게 먹어야하는 것일까?
나이만 먹는다고 철이 들지 않는 것처럼 교회만 다닌다고 신앙의 연륜이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처럼 응석을 부린 철부지 신앙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철든 신앙인이 돼 가는 것, 그런 모습이 어떤 것인지 이성자 권사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글_참평안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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