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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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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벗어나 하나님께로_ 가수 조미미 성도
 글쓴이 : 관리자
 

1970년대 최고의 가수 조미미의 활약상은 당시 일간지 기사에서 어렵지 않게 검색할 수 있다. 거의 매년 10대 가수로 뽑혔고, 1974년에는 첫 딸을 순산했다는 소식이며, 출산 후 복귀하자마자 1976년 10대 가수로 다시 선정됐다는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1972년의 경우 함께 10대 가수에 선정된 이들은 남진, 나훈아, 이상렬, 이용복, 김상진, 김상희, 문주란, 정훈희, 하춘화 등이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미미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 7월 24일 주일 2부 예배 후 평강제일교회 ‘행복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평강제일교회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17년 전이죠. 평강제일교회가 주최한 미국 동포 선교, 위문 공연에 참가했어요. 남편이 병석에 있어 낙이 없던 시절이었어요. 주위 사람들이 ‘인생에 아무 재미도 못 느끼는 얼굴’이라고 할 정도였죠. 아는 후배에게 참가 제의를 받았는데, 비행기 좌석이 이코노미라길래 안 간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후배가 “언니, 이번에 가면 절대로 후회 안 할걸.” 그러더라고요. 나중에 들으니 박윤식 원로목사님이 ‘원하는 대로 해드리라’고 하면서 저를 꼭 참석시키라고 하셨다는 거예요. 그렇게 미국에 따라 갔는데 일행 중에는 인기도 다 떨어지고 별 활동도 없는 원로 선배들이 많더라고요. 속으로 ‘왜 저런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초청하셨을까’ 했죠. 그런데 원로목사님이 정말 마음을 다해 그 분들을 챙기고 따뜻하게 대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저한테는 대뜸 ‘큰 딸이 되라.’고 하셨어요. 의아하기도 하고 놀랐죠. 처음 봤는데 큰 딸을 하라니…
그 후로도 원로목사님이 활동이 별로 없는 원로가수들을 골라서 초대하시고 챙겨주시는 걸 봤어요. 그런 모습을 점점 가슴으로 느꼈고, ‘깊은 뜻이 있겠구나.’ 싶었죠. 나중에 원로목사님이 “대중가요에는 민족의 역사와 국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고, 어렵던 시절 가수들이 노래로 국민의 마음을 달래줬다.”고 성도들에게 늘 말씀하시면서 형편이 어려운 원로가수들을 도와주신다는 걸 알았죠. 마음으로 존경하게 됐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점점 말씀의 깊이를 깨달으면서 ‘나도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려야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그 때가 신앙생활의 시작인가요?
아니에요. 교회를 처음 나간 것은 20년이 넘었어요. 가까운 교회에 다녔죠. 예수님을 꼭 알아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식구들이 나가니까 따라갔죠. 두 딸(안애리 권사, 안애경 성도)은 어려서 친구들 따라서 대형교회에 다녔고요. 그러다 14년 전에 딸들이 미국 보스턴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라 걱정이 많았어요. 제가 평강제일교회와 인연을 맺은 뒤라 신귀환 장로님한테 상의했어요. 그랬더니 보스턴 지교회에 오다니엘 목사님이 계시니 아무 걱정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KBS PD 출신인 오 목사님은 저와도 인연이 있었어요. 그런데 두 딸이 보스턴 지교회에 다니면서 인생이 달라진 거예요. 오 목사님이 친딸처럼 예뻐해 주시면서 믿음으로 양육시켜 주셨죠. 자기들이 그래요. 그때부터 신앙이 갑자기 성장했다고. 2시간 되는 거리를 운전해서 40일 새벽기도를 다녔대요. (조미미 성도는 “우리 딸들이 ‘참평안’을 얼마나 열심히 읽는데, 시간이 틀리면 야단맞는다.”며 둘째 딸 애경 씨와 전화를 연결시켜줬다. 애경 씨는 기자에게 “언니와 함께 1시간 반 거리를 운전해서 40일 새벽기도를 개근했다. 말씀이 너무 좋아서 말씀만 따라갔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때부터 두 딸이 우리 집안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제 친정어머니는 집에 불상만 없지 보살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독실한 불자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꿈에 예수님을 보셨다면서 “나도 이제 절에 그만 다닐때가 된 것 같다.” 하시고는 손녀들을 따라서 교회에 다니시더라고요.

딸들의 믿음은 그렇게 성장했는데 스스로의 신앙은 어떤 상태였나요.
남편(재일동포 사업가 고 안성기 씨)이 소천한 뒤 모든 것이 허무해지더군요. 눈물만 나오고 노래도 하기 싫었죠. 충전도 필요하고 해결할 문제도 있어서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거기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허송했죠. 얽혀 있는 일들이 많았어요. 잘 풀리지 않더라고요. 나를 둥지에 가두는 무서운 공기 같은 게 있었던 걸 지금은 깨닫게 됐어요. 빠져나올 수가 없더라고요. 마음으로는 돌아가서 가수 활동도 하고 두 딸한테 엄마 노릇도 잘 하고 싶은데 그 둥지가 버려지지 않았고 나올 수도 없었어요. 그 때 두 딸은 평강제일교회 울타리 안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죠. 저한테 늘 얘기했어요. “엄마, 원로목사님이 기회만 있으면 우리한테 엄마 얘기를 하셔. ‘빨리 돌아와야 되는데 너희 엄마가 너무 거기 오래 있구나’ 라고 말씀하셔.”. 그러면서 저한테 “엄마, 세상 것에 마음 빼앗기고 인생 빼앗기지 말고 빨리 돌아와야 할 것 같아.” 했어요. 그 때는 정확히 몰랐죠. 왜 그렇게 빨리 돌아가야 하는지, 왜 오래 머무르면 안 되는지.

그러다 언제 귀국하신 겁니까?
2년 3개월 전이에요. 돌아오자마자 원로목사님을 찾아뵈었어요. 귀국하면서 ‘만약 원로목사님이 모른 체 하시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셨죠. ‘잘 왔다’고 하시고, ‘더 빨리 왔으면 인생의 시간도 손해 보지 않고 물질의 손해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거기까지 생각 못하고 그 아까운 시간들을 버렸으니 많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말씀에 깊이 들어가야 살 길이다.’라고 하셨어요.

회개를 많이 하셨습니까?
날마다 했어요. 지금도 하고요. 회개 기도를 드리면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몰라요. “하나님, 아까운 시간들 내가 버렸어요.” 그렇게 기도하면 정말 눈물이 나와요. 열 번 기도하면 여덟 번은 울어요. “하나님, 이제 저를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께 마음 다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해요. 이제 저는 참으로 믿어요. ‘꼭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는 걸요.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지시게 됐죠?
전에는 너무 외로왔고, 눈만 뜨면 걱정이 엄습해 왔어요. 늘 근심하는 모습이 거울로 봐도 보이더라고요. 기도했죠. 정말 기도했어요.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슬픔과 근심을 없애주세요. 앞으로는 세상 것에 욕심 내지 않을 테니 물질은 안 주시더라도 외로움, 걱정은 다 가져가 주세요.”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어요. 상대를 때리고 욕해주고도 싶었어요. 그런 생각을 잊게 해달라고 정말 열심히 기도했죠. “여기 있었어야 할 제가 다른 나라 가서 긴 세월을 허비했으니 모두 큰 죄입니다. 회개하고 살 테니 하나님이 저를 붙들어 주셔서 새롭게 해주세요. 새로 태어난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깨끗한 영을 갖고 살게 해주세요.” 뜨겁게 기도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 어느 시간부터인가 잊게 됐어요. 용서하게 되더라고요. 신앙이 아니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죽여도 시원치 않겠다.’고 생각할 때가 너무 많았거든요. 그 마음을 기도로 풀었어요. 그랬더니 형통하게 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살아 계시다는 것, 내 얘기를 다 들어주시고 옆에서 보고 계시는구나 하는 걸 확신하게 됐어요. 지금은 그 죽이도록 미웠던 사람과 얘기도 해요. 용서가 됐어요. 물론 지금도 문득 문득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해요. 그러면 또 기도해요. “하나님, 제가 기도드렸잖아요. 조금도 남김없이 가져가 주시고 해결해 주실 걸로 믿으니 그런 생각으로 살게 해주세요. 항상 마음의 평화 주세요.” 라고요.
그 어둠 같던 괴로움이 없어지니 행복해요. 빨리 포기 못한 것이 잘못이었고 세상 것에 연연한 것이 욕심이었죠. 그러면서 찬송가 가사를 생각하죠.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지금은 죄 짓지 않고, 더 성실한 생활, 하나님만 붙들고 가는 세월이 되자고 다짐하면서 살아요. 전도서에 “헛되고 헛되다.”고 하셨잖아요. 인기도 헛되고 젊음도 헛되고 남편과의 사랑도 헛되죠. 지금은 옆에 없으니까요. 이제는 하나님이 남편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들이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집가라고 하면 제가 그래요. “됐거든. 나 신랑 있거든.”

조미미 성도는 지난해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이 과정들에 대해 “일본에서 10년의 둥지를 벗어나기가 힘들었는데. 은인을 만나 도움을 받고 나오게 됐다.”고 고백했다.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거군요.

귀국한 뒤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주일예배를 드렸어요. 주일이 끼어 있는 일정이 들어오면 모두 거절해요. 주일이 오는 게 너무 즐거워요. 성경 지식이 별로 없으니 틈나는대로 성경도 읽고, 교회 와서 말씀 듣고, 구속사 시리즈도 매일 읽고요. 하루 2,3쪽씩 읽어요. 같이 사는 둘째 딸과 서로 몇 쪽씩 낭독하기도 해요. 아직은 내용이 머리 속에 쏙 들어오지는 않아요. 그러면 딸이 그래요. “엄마, 그래도 열심히 읽다 보면 엄마가 책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전도도 많이 하고 싶은데 제가 말주변이 별로 없어요. 가족 중에 몇 사람만 했어요. 그래도 다들 열심히 나와요. 친 여동생도 전도했고 조카들도 했고요. 조카 며느리한테는 “네가 정말 평강제일교회 가 보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네 마음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해서 데리고 왔어요. 지금 아주 열심히 나와요. 자기들이 알아서 “교회 근처로 이사가야 한다.”며 오류동으로 이사도 왔어요. 제가 “그래 맞아. 교회 근처에 사는게 좋아. 어떻게 알았니?” 했죠. 저도 집이 팔리는 대로 교회 근처로 이사 올 거예요.



모리아 성전에서 찬양도 여러번 하셨죠?
귀국한 뒤 얼마 지나 새생명 축제(주:평강제일교회 전도축제)가 열렸어요. 마지막 날 아무 생각 없이 집에 있다가 잠깐 밖에 나갔는데 그 사이에 교회에서 찾는 전화가 왔어요. (목이 메어) 머리도, 의상도 아무 준비도 안돼 있지만 ‘오직 말씀에 순종해야겠다’는 생각이 번갯불처럼 지나갔어요. 경기도 덕소 집에서 교회까지 택시로 40분 만에 왔어요. 오면서 모자라는 기도지만 막 기도했어요. 담대하게 이 순간을 헤쳐 나갈 힘을 달라고요. 둘째 딸이 교회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모리아 성전에 올라가 보니 원로목사님의 설교가 계속되고 있었어요. 도착한지 10분도 안 돼 저를 불러내서 성도들에게 소개해 주셨죠. 마음 속으로는 눈물이 막 쏟아지는데 신기하게도 눈물이 확 들어가면서 반주가 시작되니까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그 순간 ‘아,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구나. 내가 그걸 잊고 10년 가까운 세월을 헛되이 보냈구나.’ 생각했어요.

무슨 곡을 부르셨나요?
예배는 아니고 전도 축제니까 제 대표곡인 ‘바다가 육지라면’을 불렀어요. 앵콜곡으로 ‘황성옛터’를 불렀고요. 성도들도 잊혀졌던 가수 조미미가 갑자기 교회 행사에 나오니까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그 때 박수 소리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새롭게 다짐했고 굉장히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원로목사님께 정말 감사하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으니까요. 그 뜻을 봐서라도 믿음의 삶을 살아야죠.



가수 데뷔는 언제 하신 거죠.
제 고향이 전남 목포에요. 우리 교회 남진 장로님이 초등학교 2년 선배죠. 같이 자라다시피 했어요. 고1때 목포 방송국에서 전속가수를 뽑는 콩쿨이 있었어요. 한번 나가보자 해서 나갔는데 1등을 했죠. 그러다 서울 동아방송국에서 제1회 가요 콩쿨을 한다는 거예요. 방송국에서 나가보라고 권하더라고요. 나갔는데 특등을 했어요. 그 때 ‘아, 나는 가수를 해야겠구나’ 하고 마음먹었죠. 고2 때였어요. 그 길로 서울에 자리를 잡고 목포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바로 음반을 취입했고 1966년 초에 음반이 나왔죠. 조금 지나서 김세레나와 김부자도 콩쿨에 입상해 동아방송 전속가수가 됐어요. 우리 셋이 트리오같이 잘 어울린다고들 했었죠. 음반도 같이 냈고요. 그런데 2년 가까이 중간 히트곡은 나오는데 빅 히트곡은 없었어요. 그러다 1969년 초에 ‘선생님’이라는 곡이 대히트를 친 거예요. 당시 양대 음반사가 오아시스 레코드와 지구 레코드였는데 오아시스의 얼굴 가수가 나훈아 씨와 저였어요. 서로 바꿔 부른 노래도 30곡 쯤 되죠. 그 때부터는 단 몇 달의 공백도 없을 만큼 히트곡이 끊이지 않았죠. ‘바다가 육지라면’은 1970년에 나왔고, ‘먼데서 오신 손님’, ‘서산 갯마을’ 등 히트곡이 이어졌죠. 서울에서 공개방송을 한 뒤 비행기 타고 부산 가서 공연하고 저녁 때 다시 서울 올라와서 방송을 하기도 했어요.


우리 세 모녀는 모이면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서로 자랑하느라 난리가 나요

전국민이 알아보는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분으로서 ‘인생의 성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자식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남편이 살아 있다면 ‘사랑’이나 ‘부부’라고 얘기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지금 남편은 없고, 그렇다고 인기가 영원해서 지금까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가장 큰 보물은 두 딸이에요. 그래서 내가 부자라고 날마다 생각해요. 인생은 참 살만해요. 하나님을 영접해서 원로목사님 같은 분을 알게 됐다는 것, 그 말씀을 듣고 매주 성도들과 교회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제일 큰 기쁨이에요. 큰 딸은 인도네시아로 시집가서 그곳 지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고 둘째 딸은 유학 마치고 돌아와서 교회에서 살다시피 해요. 지난 5월 큰 딸이 서울에 와서 권사 임직을 받았죠. 좋으면서도 부끄럽더라고요. 나는 아직 초신자인데… 모르는 분들은 저한테 ‘조 집사님’이라고 불러요. 그러면 “아니, 저 집사 아니에요. 초신자예요.” 하죠. 그랬더니 어느 분이 그러더라고요. “아니, 따님은 권사 되셨는데 빨리 빨리 올라가셔야죠.”(웃음)

좋아하시는 찬송은 뭔가요.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요.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정말 제가 좋아하는 곡이에요. 제 형편을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다 맡기면 형통하게 풀린다는 걸 믿어요.
두 번째는 ‘죄짐 맡은 우리 구주’예요. 인도네시아 딸네 집에 갔는데 그곳 지교회에서 인도네시아 성도들이 이 곡을 열심히 찬양하는 거예요. ‘한국에서도 많이 못 들어본 찬송인데 어쩌면 이리 좋을까… 이 곡은 내가 꼭 연습해서 모리아 성전에서 특송으로 불러야지.’하고 마음 먹었어요. 그 때 마음먹은 것을 지난 5월에 풀었잖아요. 잘했죠? (웃음) 우리 사위가 장로 임직을 받고 딸이 권사 임직을 받을 때였어요. 그 날도 찬양을 부를 때 눈물이 얼굴까지 가득 차오르는데 눈물방울은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세상 노래는 웃음이나 울음이 나오면 목이 꽉 막혀서 노래를 절대 못하거든요.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구나.’ 싶었죠. 나중에 딸들이 “엄마 안 울더라?” 하길래 “얘는, 하나님이 절대 안 울게 하시거든.” 했죠. 저는 노래를 하면 노래 속으로 들어가요.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찬양할 때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행복했던 일들, 슬펐던 일들 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거지… 생각하면서 불러요.

신앙생활의 목표는 뭔가요?
큰 딸이 권사 됐는데 나도 권사 돼야죠.(웃음) 열심히 성경공부도 하고 신앙의 깊이도 쌓고 빨리 깨우쳐서 딸처럼 권사 돼야죠. 그래야 엄마가 부끄럽지 않죠. 나는 목표가 권사에요, 권사.(웃음) 큰 딸한테 “네가 벌써 권사 되니까 나는 뭐니. 성도들에게 내가 면목이 없어.” 그랬어요. 그랬더니 딸이 “괜찮거든. 내가 열심히 하는 걸 성도들도 아니까 괜찮아.” 그래요. 우리 세 모녀는 모이면 서로 자기 칭찬을 해요. 하나님한테 받은 사랑을 서로 자랑하느라고 난리가 나요.

사위가 인도네시아 인인데 대화를 어떻게 하세요.
세계 공통어인 손짓발짓이 있잖아요. 제가 브로큰 잉글리쉬도 하고요. 제 남편이 재일동포라 일본 이름으로는 ‘야스다 에이키츠’예요. 그런데 사위가 회사 이름을 ‘에이키츠’라고 바꿨어요. 한자로는 ‘영원히 길하다(永吉)’라는 뜻이거든요. 너무 고마왔어요. 사위가 저한테 전화를 걸어서 “엄마… 아빠 이름…”(장모님, 장인어른 이름으로 회사 이름 바꿨어요)” 이래요. 한국말을 아주 조금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오, 땡큐 잭슨” 그랬어요. 큰 딸이 “엄마, 잭슨 참 착하지? 아빠 이름을 얘기해줬더니 그걸로 회사 이름을 바꿨어.” 그러더라고요. 사위가 참 예뻐요. 사위와 큰 딸 사이에 손자가 셋이에요. 10살, 8살, 7살. 아들만 셋이죠. 셋이 기도하는 걸 들어보면 가슴이 찡해요. 셋이 똑같이 “아버지! 똑똑하게 자라게 해주세요. 성실하게 자라게 해주세요!” 하고 소리치면서 기도해요.

가수로서의 계획은요.
트로트 명맥이 끊긴 게 안타까와요. 요즘 트로트는 가요에 가까워요. 진짜 트로트는 2/4 박자라야 해요. 빠른 리듬으로는 단조의 정취를 못 담아내요. 히트곡을 내야 하는데 요즘은 기획사들이 너무 돈벌이 중심이라 어려움이 많아요. 하나님께서 좋은 곡을 한 번 더 주셔서 명곡을 부를 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기도해요. KBS 가요무대에는 거의 매달 출연하고 있고요.

하계 대성회에 가시죠?
그럼요. 어렸을 때 수학여행 가는 기분이에요. 두근두근하고. 수학여행 갈 때 얼마나 좋았어요. 딱 그 기분이에요.



조미미 성도는 하계 대성회 마지막날 밤 열린 ‘위대한 장자’ 공연에 특별 게스트로 출연해 ‘지금까지 지내온 것’, ‘바다가 육지라면’, ‘황성 옛터’를 불렀다. 절정의 인기를 누렸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그녀. 믿음으로 거듭난 그녀에게서 대한민국을 뒤흔들 히트곡 한 곡이 더 불려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_ 호준석 참평안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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