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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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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영남-인생은 사랑, 영원한 사랑 (2008년 7월호)
 글쓴이 : 관리자
 

이번 호 ‘평안 인터뷰’에서는 가수 조영남 씨를 만났다. 조영남 씨는 지난 7월 6일(주일) 평강제일교회를 방문해 2부예배 봉헌 찬양을 드렸다. 인터뷰는 2부예배 후 점심식사를 마친 뒤 에담 식당에서 이뤄졌다.

 

먼저 알아둘 것은 조영남 씨는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인’이라 하긴 어렵다는 사실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고, 미국에서 신학대학(트리니티 신학대)을 졸업했으며, ‘예수의 샅바를 잡다’라는 책을 쓸 만큼 기독교적 지향이 강한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을 창조주이자 구주로 고백하는 것’이 성도라고 정의한다면 이 점에 대해서는 본인도 주위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바인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가치에 대한 그의 애정과 사색의 깊이는 남다른 바 있다. 그가 교회에서 ‘찬양’을 드리는 것에 대해 “성도도 아니면서 무슨 찬양을 드리나”라고 비판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기독교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지만 기독교인은 아닌 조영남. 그와의 대화를 통해 어떤 접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가 이번 인터뷰의 주목할 포인트다.

오늘 예배 때 “내 평생에 가는 길”(470장), “나는 예수 따라가는”(387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40장), 이렇게 세 곡의 찬송을 부르셨죠. 그런데 원래 가사와 좀 다르게 부르시더군요. 즉석에서 받은 영감대로 하신 건가요?

요새 찬송가 가사가 옛날 가사만 못해요. 요새 가사는 문장 그대로 번역을 하는데 주력했지만 나는 옛날 것이 좋아요. 바뀐 찬송가 가사는 뜻만 문맥대로 한 것이지 말을 못 살렸어요. 예를 들면 오늘 부른 “나는 예수 따라가는” 찬송 후렴에서 옛날 가사는 ‘주의 군병 된 내 몸에’ 인데, 새 번역은 ‘주의 용사된 나에게’ 이렇게 돼 있어요. 이러면 원곡의 느낌이 아니거든요.

영감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난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번역한 거에요.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옛날 버전으로 부릅니다.

아까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성도들과 함께 부르다가 멈추시고 ‘내 스타일’로 부르자고 하셨죠. 이유가 있습니까.

어디 가나 너무 똑같잖아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보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이게 더 좋아요. 흑인 교회에 가보면 찬송도 흑인 스타일로 자기네 걸로 소화해서 불러요. 그게 훨씬 감명 깊고 좋아요. 내가 오늘 부른 것도 내 스타일로 부르면 훨씬 감명 깊다 이거죠.

우리 교회 지휘자인 권혁순 장로님과 서울 음대 동창이라고요

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죠. 그 친구는 모범생이고 나는 노는 학생이라 노는 물은 달랐어요. 나는 대학교 때 대중가요 쪽으로 빠져나왔죠. 그렇지만 내가 클래식 음악을 했었고 클래식을 잘 하는 학생으로 이름을 날렸던 걸 권혁순은 잘 알죠.

 

평강제일교회에 오신 게 이번이 두 번째입니까

찬양을 한 건 두 번째고 그 전에 강원도 수양관(주:설악산 여호와이레 수양관)에서 찬양한 적이 있었죠. 그게 정원식 장로님이 국무총리 할 때니까 90년대 초반일 거에요.

 평강제일교회에 대한 느낌이 어떻습니까

아주 편해요. 다른 교회와 다르죠. 내 스타일의 교회에요. 자유스럽고 딱딱하지 않고... 왜 음식점이 주인 닮아가잖아요. 이 교회도 어른이 고리타분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원로목사님과 같이 있으면 편하고 큰 형 같고, 내 ‘두목’을 만난 것 같고, 다른 데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느낌이죠.

 ‘두목’을 만난 것 같다? 어떤 면모 때문에 그렇게 느끼시나요

인간에게는 멘토, 정신적 지주, 스승, 이런 게 필요하잖아요. 누구나 찾게 마련이죠. 형 같은 사람을 만나고 의지하고 싶어하는데 원로목사님은 인간적으로 화통하고, 남을 배려하는 게 종교,철학을 떠나서 그 분에게는 인본주의, 휴머니즘이 있는 거에요

인간을 존중한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사람을 존중하는 게 먼저 깔려 있고 그 다음에 종교를 유포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인 거죠. 좋은 인간이 되게 하고 끊임없이 코치해 주시는 그 정신을 높이 사죠.

‘좋은 인간’이란 어떤 인간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바다같이 넓고 화통한, 사방으로 확 트이고 포용력 있고 너그럽고,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거고. 그러나 그게 쉽지가 않죠. 현실이 늘 가로막으니까. 그런 것들을 종교인들은 종교로 풀려는 거고, 나는 좀 다른데, 내가 아티스트여서 그런지 내 머리로 내 실력으로 풀려고 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게 기독교 아닙니까

나는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충분한 인간의 조건을 타고 난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그것을 껴안고, 뛰어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하나님이 나를 만들 때, 원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신학대학을 졸업하셨죠. 제가 이해하는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거든요.

나는 신학대학 4년을 다니는 동안, 그 문제가 나하고는 어긋났다고 해야 할까요, 인간의 한계를 본질적으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신앙으로 그걸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다양성이 있는 거죠. 나는 늘 아웃사이더 같은 기질이 있어요.

어느 인터뷰를 보니까 신학대학 다니면서 ‘거듭남’이 스스로에게 불가능한 실천이라고 생각하셨고 그래서 그 대신에 ‘겸손’이라는 형벌을 지고 살기로 다짐하셨다고 하더군요.

이그잭틀리(exactly)!...맞습니다.

‘겸손’을 어떻게 실천하십니까

불가능하죠. 끊임없이 트라이(try), 노력하는 것뿐이에요. 나는 예수님의 본질도 아웃사이더라는 생각을 굳게 가지고 있어요. 예수님 이전 시대의 틀에서 보면 틀에서 벗어나신 분이죠. 나는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이에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으로 해답을 내놓았지만 나는 그렇게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항상 겸손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겸손’의 정의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오늘 예배 때도 설교 중에 강조를 하시더라구요. 나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겸손’이 추출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내 본질이라는 것은, 내가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 못하잖아요? 누가 뺨 때리면, 다른 쪽 못 내놓잖아요? 현실적으로 원수를 사랑 못하고요. 본질적으로 그러지를 못하니까 ‘내가 문제가 있구나’, ‘내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인간이구나’ 라고 인식하는 거죠. 그걸 해결하려고 수도원에 가서 신부가 되는 사람도 있고요. 그렇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고... 나는 삶을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인생을 살며 부딪치면서 보니까 나만 나쁜 인간이 아니고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다같이 나쁜 인간들이구나, 그러니까 나도 편해지자, 그리고 최대한 겸허하게 살자... 그렇게 본령(本領)에 못 들어가 있고 방황하는 아웃사이더, 그게 내 팔자구나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렇게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했죠. 그런데 그런 방황, ‘wandering’이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잊어버렸던(forgotten)' 만남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게 원로목사님이 이번에 쓰신 “잊어버렸던 만남”의 메시지거든요. 그런데 조 선생님은 20대의 너무 젊은 나이에 그런 가능성을 포기해 버리신 것 아닙니까

글쎄, 그 대목에서 길이 갈라지는 거죠. 그렇게 믿는 당신은 그 길을 가는 거고 나같은 사람은 다른 길을 가는 거에요. 나는 거기에 스며들지 못했으니까. 그게 안 되니까 그냥 ‘wandering' 하는 거죠.

‘인생’이라는 시를 쓰셨죠.

‘인생’, 그거 내가 썼죠.

그 시에 “인생은 사랑, 영원한 사랑”이라고 쓰셨더군요. 사랑은 기독교의 본령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을 규정하는 태초의 언어가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인간을 더 잘 묘사한 게 없다고 봐요. 종교를 떠나서 사랑은 인간의 본질이죠. 모든 게 다 들어있는 것 아닙니까. 최고의 단어라고 생각해요. 참 고귀한 거죠.

 인생에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 오셨습니까

우리는 밴댕이 같이 사랑을 좁게 한정해요. 남녀간의 사랑이라든지 말이죠. 그것은 일부분이에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우리 삶의 본질, 우주적인 것, 사랑의 마음, 영혼, 에너지 이런 걸 모두 뭉뚱그려서, 사랑은 생명과 같은 수준의 단어라고 생각해요.

사랑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한테는 그게 참 어려워요. 하나님이라는 대치의 대상이 없이 독립적인 사랑이 될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 웃음의 종교다’ 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신 적 있죠

그게 바로, 기독교가 사랑이니까요. 불교나 유교나 소크라테스나 사랑을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요. 기독교만 사랑을 강조하죠. 기독교가 종교적인 독트린으로 사랑을 강조하기 때문에 나도 꼼짝 못하는 거에요. 사람은 사랑에 대해서는 종속하려는 본능이 있는 거죠. 기독교를 통해서 사랑하고, 기쁘게 살려고 하고, 겸손하려고 하고, 기독교를 통해서 가장 큰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거죠.

스스로의 존엄성, 자기 존재를 최고의 것으로 여기는 자기애(自己愛)를 중요하게 생각하시죠?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 인간도 결국 나이 들고 죽게 마련인데 그런 근본적 한계를 뛰어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 아닐까요

그런데 나는 아직 답답하지가 않아요. 사랑을 찾고 있고, 내 영혼을 누가 가로막는 것 같지도 않고, 늙어가면서 불편하지도 않고...

성경에 나타난 기적들,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 오병이어의 기적, 이런 초월적인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신학대학 다닐 때도 교수들에게 그런 질문 많이 받았어요. 궁극적인 질문은 이거에요.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 내 대답은 “I don't know” 였어요. 그런데 졸업은 했어요. 내가 노래를 잘 하니까 학교에서 못 쫓아낸 거죠.(웃음)

지금도 “still don't know"이신 거죠.

‘still don't know’죠. 교회에서 정직하라고 하잖아요. 내게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정직하려고 애쓰는 거에요. 내가 만일 몇백년 전 서양에 살았다면 종교재판으로 맞아 죽었겠죠.

 화형당했거나요

그렇지... 근데 내 성격을 보면 그런 상황이었다면 그냥 믿는다고 했을 것 같기도 해요.(웃음)

아까 평강제일교회가 편하다고 하셨는데 다른 교회들과는 좀 다른 파격적인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아까 예배 중에 성도간의 금전 거래나 청년들의 이성 교제 문제 같은 것도 직설적으로 훈계, 질책하셨잖아요.

나는 그거 너무 좋아요. 얼마나 좋아요?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어요. 자유롭게 포도주도 드시고 성전에 가서 잘못된 것 때려 부수기도 하셨잖아요. 교회에서만 점잔 떨고 교회에서만 다른 사람인척 하고 교회에서만 쓰는 고어(古語)같은 말들 쓰고, 아유, 난 이거 답답하죠.

 이 ‘평안 인터뷰’는 원래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는 지면이라 오늘 인터뷰가 그동안의 인터뷰들과는 많이 다를 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조 선생님이나 우리나 출발점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 가는 길은 다르지만 접점은 있기 때문에 이 인터뷰를 보고 우리 성도님들도 은혜 받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구요. 또, 앞으로 같은 길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지요. 모르는 것 아닙니까.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다름의 아름다움을 아는 것이 예술이거든요. 다 똑같으면 예술이 어떻게 생겨요.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잖아요.(주:요한복음 8:31-32), 진리를 알면 자유스럽게 되는 거거든요. 한국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에게 제일 아쉬운 점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거에요.

‘국민가수’이자 ‘자유롭게 방황하는 영혼’ 조영남 씨는 인터뷰를 마친 뒤 “신학대학 졸업한 뒤 이런 문제를 이렇게 치열하게 얘기한 건 처음이었다”며 “아주 재미있었다”고 즐거워했다. 에담 식당을 나서면서 처음 보는 아기를 끌어안고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말고 영남이 형이라고 불러” 하며 뽀뽀를 해주기도 했다. 그의 길과 우리의 길이 어느 지점에선가 곧 만나길,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삶 속에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역사하길 기도드린다.

끝으로 인터뷰 중 언급됐던 조영남 씨의 시 ‘인생’을 덧붙인다.


<인생 / 조영남>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던 그때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산과 바다를 만들던 그때에
에덴 동산 저편에 한 쌍의 인간을 살게 했네
생명어린 숨결과 따뜻한 마음만의
인생은 사랑 영원한 사랑

에덴동산 저편에 미움의 싹이 움트던 그때부터
에덴동산 저편에 싸움이 시작되던 그때부터
조그마한 거짓으로 인간은 죄악에 빠졌네
생명이 멀어지고 영혼이 사라져도
인생은 사랑 영원한 사랑

이천년 전 유대 땅에 한 어린아이 탄생했던 그때부터
세상죄 짊어지고 나무에 피 흘렸던 그때부터
사랑이 미움 이기고 평화는 전쟁을 이겼네
마지막 숨을 거두며 그가 남긴 한마디
인생은 사랑 영원한 사랑
인생은 사랑 영원한 사랑

글: 호준석 Y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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