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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식 전 총리의 '낮아지는 믿음' (2010년 5월호)
 글쓴이 : 관리자
 

낮아지는 믿음

정원식 장로. 존경받는 학자로, 교육행정의 수장으로, 대한민국의 재상(宰相)으로 반세기를 보낸 뒤 지금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성경보수 총회장으로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 그의 인생 여정을 들어 봤다.



신앙생활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모태신앙입니다. 부모님이 일찍 기독교를 받아 들이셨고 젊은 시절부터 미국 선교사들에게 성경 공부를 하셨습니다. 그 영향으로 저도 모태신앙이 됐고 세례를 받게 됐죠. 어머님이 저를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하셨고 저도 어머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어머님의 신앙적 가르침 중에 기억나시는게 있나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찬송가가 있어요. 그 찬송가를 듣거나 부르면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이라는 찬송입니다. 어머님의 적극적인 신앙이 어려서부터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젊은 시절부터 미국 선교사들을 많이 만나셨고, 미국 선교사들에게 미국에 가지 않겠느냐고 권유도 받아서 젊은 시절부터 미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6·25 후 부모님이 다 남쪽으로 내려오셨는데, 이왕 고향을 버렸으니 어디나 마찬가지라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장남 입장에서 “어떻게 낯선 미국에 가서 사시겠습니까”하고 만류했지만 자식한테 신세지고 싶지 않다면서 떠나셨어요. 어머님이 적극적으로 혼자 다니면서 수속도 다 밟으셨지요. 미국에서는 교회 봉사도하시고 사업도 하면서 사시다가 어머님은 98세, 아버님은 94세에 돌아가셨습니다. 평안한 삶을 사시다가 평안하게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고향이 황해도시죠. 고향 생각 많이 나십니까
많이 나죠.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집을 떠나서 유학을 했어요. 그 전까지는 주일학교를 다녔는데 집을 떠나면서부터 교회에 다니지못했어요. 그래서 7-8년간 신앙의 공백이 있었죠. 해방 후 해주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부모님과 장래 문제를 놓고 토론을 했죠. 무슨 공부를 할 것인가 하는 거였습니다. 어머님은 신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목회자가 되라는 것이었죠. 아버님 생각은 다르셨고 제 생각도 달랐죠. 그래서 3일 동안 토론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목회자는 목회자인데 사회의 목회자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교육의길입니다. 서울에 와서 서울대 시험을 치렀습니다. 교육학과에 들어가게 됐죠. 대학에 가면서 다시 신앙을 찾게 됐습니다. 서울대에 기독학생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죠. 이영덕 씨(전 국무총리)도 그때 친구였고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결혼하고서는 효창동에 살면서 그곳 교회에 다니다가 화곡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기서 한 교회에 다녔는데 그 교회에 분규가 생겼어요. 개입하고 싶지 않아서 슬그머니 교회를 떠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당시 연세대교목실장이었던 은준관 교수의 소개로 연세대 교목실이 운영하는 대학 교회에 다니게 됐습니다. 몇 년을 다녔죠. 그런데 아무래도 교회 같은 느낌이 좀 적었습니다. 주일에만 예배를 드리는 교회니까 성경공부도 없고 교인들 사이에 신앙적 교제도 없고 봉사도 없었죠. 제 집사람(임학영 권사)이 그런 것에 불만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 집사람이 평강제일교회에 다니게 됐어요. 그러면서 저도 안되겠다 해서 같이 다니게 됐습니다. 그게1980년도이에요. 1989년 문교부 장관 재임시절에 장로 장립을 받았죠. 국무총리 재직 시절 교회까지 나와서 예배 드리기 어려울 때는 평강제일교회 목사님들이 삼청동 총리 공관으로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기도 했어요.

평강제일교회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것인가요
먼저 성경 중심의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도 성경 중심이지 다른 말이 없거든요. 저도 서울대 다닐때 기독학생회 운동도 했고 연세대 교회에 다닐 때도 교회 가르침에 개인 구원보다는 사회 구원적인 요소가 많았어요. 사회의 비리 문제나 사회에서의 기독교인의 사명을 강조하는 설교가 많았고 나도 그런 영향을 받았죠. 또 젊은 교수 시절 강원룡 목사를 알게 돼서 그분이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시작한 ‘대화’운동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룡 목사의 기본적 신앙관도 사회 구원이에요.

그런데 그 뒤에 평강제일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부터 사회 구원적인 요소보다는 오히려 내가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우리나라에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성경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사회 구원적인 기독교관을 갖게 되면 성경으로부터는 멀어져 가는 느낌이 많아요. 그러나 평강제일교회는 사회 문제보다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게 하고, 성경을 바르고 깊이 이해해서 나의 삶을 더 바르고 기쁘고 평안 속에서 살아가도록 한다는 것이 첫째 장점입니다. 한 마디로 하면 성경 중심의 신앙이죠.

둘째로는 교회 음악이예요. 우리교회처럼 성가대원숫자도 많고 오케스트라도 거의 풀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저는 원래 교회 음악을 무척 좋아합니다. 앞으로도 우리교회의 교회음악이 계속 발전하려면 젊은이들을 많이 양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장로님들을 설득해서 교회 브라스 밴드도 만들었어요. 지금은 초·중·고생들이 80명 정도 모이고 예배나 교회 행사 때 연주도 합니다. 평강제일교회에 처음 오는 분들이 성가대 찬양과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좋은 인상을 받는 게 사실이죠.

셋째는 자연 환경입니다. 이런 교회가 서울에 없잖아요. 동산 같기도 하고 공원 같기도 하고 말이죠. 이런교회에서 매주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 하고 찬양도 한다는 게 참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녹음(綠陰)이 질때에도 좋고, 꽃 필 때에도 좋고, 겨울에는 설경(雪景)이좋고요.

평강제일교회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도들이 성경 중심의 생활을 하면서 항상 기쁘고 즐거운 표정과 마음으로 살면 자연스럽게 전도가 된다고 생각해요. ‘성경 중심의 생활을 하면 저렇게 항시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구나’하고 사람들이 보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이 평강제일교회 성도들의 전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들은 뭘 하길래 항상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느냐?”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거죠. 늘 즐겁게 살아가고, 주일에는 정말 더 즐겁게 살아가고 말이죠. 그것이 평강제일교회의 비전이고 사명이죠.

성도들이 얼마나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점수를 매긴다면요
하하… 난 평강제일교회 성도들처럼 열성적인 분들이 드물다고 봐요. 우리교회 성도 중에는 겉으로 보이는 걸로 보면 고달픈 삶을 사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지만 교회에 와서 기쁘게 지내시는 걸 보면 굉장히 높이 평가합니다. 우리 성도들 정말 대단한 성도들입니다. 여러 가지 봉사와 헌신을 즐겁게 감당하는 걸 보면서‘대단한성도들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신앙인으로서의 개인적 목표는 어떤 것입니까
저는 본래 사회의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공직에 있을 때 깨끗하고 열성적으로 일을 하면서 잡음 없는 공직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중심의 생활을 하면서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기 만족도 얻지만 사회에 그것을 알리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전도하지는 않았지만 양식 있는 공직생활을 해 왔고, 모범적인 사회생활을 해 왔고,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왔고, 그것을 즐겁고 기쁜 모습으로 주변에 전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윤식 원로목사님과는 중학교 동창이시죠
원로목사님은 한 마디로 말하면 영적 지도자로서의 위상이 확립된 목회자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기도하는 목회자입니다. 많은 성도들에게 영적 지도자로서, 기도하는 목회자로서 위상이 확립된 분입니다. 또, 교회를 사랑하는 목회자입니다. 성도들 개개인에게 늘 사랑으로 베풀고 영적으로 기도해 주는 목회자이죠. 저한테도 이런 저런 관심을 늘 베풀고 권면도 많이 해 줍니다. 사랑이 지극하다고 느끼지요. 개인적인 관계를 떠나서 그분은 영적인 지도자의 위상이 확립된 분이고 나는 영적인 추종자라고 봐야겠죠.

팔순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무척 건강하신데 비결이있습니까
감기를 앓은 것이 까마득한 옛날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감기를 앓은 적이 없어요. 서양 사람들의 건강 기준은 ‘보행, 감기, 두통’인데 저는 세 가지 다 문제가 없습니다. 건강은 결국 관리거든요. 저는 부모님이 두 분다 장수하셨기 때문에 유전적으로도 좋은 조건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 믿을 수는 없고 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늘 평강, 평안, 기쁜 생활을 하자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화를 안 내고 좋게 생각하려고 하고 ‘그럴 수도 있다’하면서 평안하게 마음먹으려고 합니다.
둘째는 섭생(攝生)입니다. 어느 쪽에 치우치거나 지나친 육식을 하지 않고 야채, 생선 위주로 적게 먹습니다. 제식사량을 보면 아마 놀랄 겁니다.
셋째는 운동입니다. 한꺼번에 많이 해서는 안 되고 꾸준히 해야 하거든요.저는 하루에 20-30분씩 일주일에 다섯 번은 운동을합니다. 그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팔십 오세에 가나안의 험한 산지를 정복하러 떠났던  갈렙처럼, 특별한 축복을 받으며 살아온 정원식 장로의 삶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지금부터 더 강건해지기를 기도한다.

글_호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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