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ㅣ SITEMAPㅣCONTACT US
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HOME > 인터뷰 People  
 
   
청국장을 사랑하는 '막걸리' 목사_존 맥컬리 (2009년 1월호)
 글쓴이 : 관리자
 

청국장을 사랑하는 '막걸리'목사



존 맥컬리 목사 (John McCurley)

외국인 선교회인 실로선교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고향 미국을 떠나 10년 동안 변함없이 실로선교회와 세계선교를 위해 쉼 없이 일하고 계시는 존 맥컬리 목사.

외국인 목사님이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 많은 성도들이 궁금할 텐데.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실로선교회에 관한 질문까지 - 존 맥컬리 목사의 원대한 비전에 귀기울여 본다.


어디서 태어나셨나요?
미국 플로리다 주의 남서부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2남 1녀 중에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조부와 증조부님이 대대로 침례교 목사님인 덕택에 어렸을 때부터 엄격한 기독교적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목사님이 되기 전에는 무엇을 해 오셨습니까?
18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제 및 가정 사정으로 바로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메릴랜드 군 소속 대학교에서 2년 동안 낮에는 군사훈련을 받고 밤에는 학교생활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로부터 22년간 군에 몸담고 있다가 40세에 장교로 퇴직했죠.

교회는 언제부터 다니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다니긴 했지만 아내를 만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믿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강제일교회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죠?
1989년 군을 떠나 아내와 워싱턴 주의 타코마 지역에 살았는데, 당시 아내가 오 다니엘 목사님과 우연히 성경공부를 하고, 제게 적극적으로 추천하여 덕분에 저도 성경공부를 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저희 부부가 큰 깨달음을 얻어 여섯 가정을 전도했고, 한 가정에 모여 예배드리기 시작하면서 타코마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원로목사님이 타코마 교회에 오셨을 때가 그 분과 첫 만남이었습니다.

어떻게 목사님이 되셨습니까?
퇴직 후 한동안은 회사에 취직하여 컴퓨터 관련직에도 있어 보고 금융 관련 일도 하는 등 여러 일을 거쳤지만, 시간이 갈수록 신학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결국 리폼드 신학 대학(ReformedCollege)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도 졸업과 함께 전도사가 되었죠. 곧 1994년에 장로가 되었고, 1996년에 LA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자마자 원로목사님께서“뉴욕주에 교회를 세우자”말씀하셔서, 타코마를 떠나 롱아일랜드 지역으로 옮겨 은혜 가운데 미국인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를 처음 담당하면서 본격적으로 목회를 시작한 거죠.

목사 안수예배 때 받았던 말씀 기억하시는지요?
많은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목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목사 안수 받을 때는 너무 긴장하고 떨렸던 것도 생생하구요.

평강제일교회 오시기 전 신앙생활과 지금의 신앙생활에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받는 말씀이 하늘 땅 차이인데 당연히 신앙 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죠.

전에는 모호한 신앙이었다면 평강제일교회에 와서는 마치 에덴동산을 발견한 것 같은 큰 기쁨을 맛 보았고, 구름 위를 걷는 듯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한국에 들어와 사는 것은 큰 결단이었을 텐데요?
1996년 뉴욕 주에 있는 롱 아일랜드 교회를 2년여 간 담당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 그 때 한 3~6개월만 한국에 들어와서 트레이닝을 받지 않겠냐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들어온 것이 어느새 10년이 됐습니다, 결단보다는 순종이었죠 (웃음).

한국 생활 어려운 점은 없나요? 있으시다면 어떻게 극복하고 계신지요?
한국 생활이나 문화 등과 관련해 어려운 점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를‘달걀(egg)’같다고 하는데요, 보이는 겉피부는 백인인데 속은 완전 동양인이라는 거죠. 그만큼 한국 생활이 친숙합니다. 다만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것이 힘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말씀이 살아 계신 곳이 진정한 본향이라는 말씀을 믿고 위로 받으면서 이겨 냅니다. 말씀 곁에 있는 것이 제겐 기쁠 따름이죠.

한국 음식 좋아하시나요?
아주 좋아합니다. 특히 청국장과 삼결살 좋아합니다. 가끔 집에서 한국 음식을 해 먹기도 하죠.

한국말은 잘 하시나요?
조금 합니다. 콩글리쉬를 잘하죠!

예배 때 설교는 어떻게 들으시나요?
예배마다 김 사무엘 목사님과 통역팀이 하는 실시간 동시통역을 듣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읽으시나요?
영어성경으로 읽습니다. 틈날 때마다 읽는데 1년에 5-6회 정도 읽는 편입니다.

평강 성도들의 매력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요?
평강제일교회 성도들은 최고죠. 누구보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믿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 인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은혜 받고 매번 감탄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결혼한 지는 40년 되어갑니다. 가족들은 현재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목사가 되고 한국에서 사는 것에 대해 가족반대는 없었나요?
물론 처음에는 반대가 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증조 할아버지가 목사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어떠한지를 가족들이 이해하고 결국은 이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또한‘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제 조카가 한국에서 살다와서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이라든지 문화 같은 것은 이미 친숙한 상태였죠.

재작년에 따님이 먼저 소천하셨죠. 그 때 신앙적으로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요?
참 힘들었습니다. 제가 죽는 것보다 더한 슬픔이었죠. 우울증까지 올 정도로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이 갑갑했습니다. 그 때 세례 요한이 생각나더라구요. 세례 요한도 당시 감옥에 갇혀 그러지 않았을까….

‘왜 나한테 이런 고통을 주실까’‘예수님은 왜 한 번도 와주지 않으실까’라는 원망 섞인 부정적 생각을 하다가 실족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번뜩 정신이 나면서‘사단이 내 가족,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통해 날 시험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절 구해 주셨습니다. 좌절의 종, 슬픔의 종이 되어 힘없던 저를 구덩이에서 꺼내 주셨습니다. 그 때 마침 원로목사님도 같은 아픔을 겪으셨는데 원로목사님께서 그 아픔과 고통을 기도하며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이 저에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실로선교회가 10주년을 맞이했는데 어떤 비전을 갖고계시나요?
세계 선교라는 원대한 비전을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차근차근 이뤄 나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실로에서는 VOD(video on demand)를 통해 세계 각국에 평강제일교회 예배를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통역하여 보급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자리잡은 지는 8-9년이 됐습니다만, 목회자로서 간절한 기도제목은 귀한 평강의 말씀이 담긴 VOD가 더 많은 나라에서 상영되고 더욱 다양한 언어로통역되는 것입니다.

지금 인도네시아에서는 평강의 말씀을 영어로 통역한 VOD를, 현지 교회 분들이 인도네시아 말로 또 바꿔서 말씀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이중 통역을 하는거죠. 그만큼 이 귀한 말씀을 사모하고 갈급한 심령들이 세계 곳곳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실로선교회에서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인도네시아어, 러시아어등으로 말씀이 전해질 수 있도록 통역인재를 발굴하고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김 사무엘 목사님과 같은 훌륭한 말씀의 통역사가 더욱 많이 배출돼서 더욱 다양한 언어로 말씀을 세계에 전해야겠죠. 또 한 가지 실로에서 계획 및 실행하고 있는 것은 온라인상 화상 메신저와 동영상 등을 통한 원거리 성경공부입니다.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중국 등지에서 말씀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평강식구들을 위해 국제적인 성경공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동영상으로 된 성경공부 강의를 웹사이트에 올려 주거나, 온라인 메신저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죠. 이러한 여러 노력들을 통해 하루빨리 전세계에 말씀이 심겨지고 퍼져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실로선교회의 비전입니다. 이러한 실로선교회의 비전을 가슴에 품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6,000년 동안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다리신 구원역사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실로선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평강제일교회는 어떤 교회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참믿음을 가르치는 곳! 평강이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말씀에 순종하고 행하는 것에 훈련받아 하나님 아버지를 따라가는 것에 언제나 노력하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구속사 시리즈는 몇 번 읽으셨나요?
<창세기의 족보>와 <잊어버렸던 만남>의 번역본을 7번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이야말로 말씀을 깊이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게 해 주었고, 저에게‘확신’을 주었습니다.

읽는 순간순간마다 ‘아멘!’ 이라고 외치게 되죠. 현재 미국의 올랜도 신학교 전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구속사 시리즈의 놀라운 말씀을 교재로 쓰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너무너무 좋습니다!

별명이 막걸리 목사님이시죠?
제가 지은 별명입니다(웃음). 미군 장교 감독관으로 있을 당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제 이름을 쉽게 기억하라고 그렇게 소개했더니 사람들이 좋아하면서 기억을 많이해 주시더라구요.

새 아침, 어둠 속에 밝은 태양의 빛이 떠오르듯 맥컬리목사님의 세계선교의 열정과 비전은 올해도 더 뜨겁게 세계를 향해 비추어 나갈 것을 기대하며 기원합니다.

글 _ 정우진 기자


 
   
 




 
 
백선엽 장군 “그 분이 우리를 도우셨…

세계최고 신학자 월키 "아브라함 박에…

“아버지가 자녀를 가르치듯 따뜻하…

주님 맞이했던 안나처럼 기도하리 - …

일석一石 하나만을 위하여 수가 성 여…

“박윤식 목사님의 성경 지식과 이해…

“박윤식 목사님의 성경 지식과 이해…

박윤식 원로목사님 사모 민갑식 여사 …

박윤식 원로목사님 사모 민갑식 여사 …

절망 속에서도 믿고 간절히 부르짖게 …

구속사를 수놓는 작가, 자수 디자이너…

美 밥 로저스 목사의 예언 - "북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