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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초기 역사의 증인 이인애 권사 (2008년 12월호)
 글쓴이 : 관리자
 

교회 초기 역사의 증인 이인애 권사

성경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 장수의 축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10번 지나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말씀의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가 있다. 평강제일교회 초기 역사를 함께 한 증인이자 지금은 타향의 하늘 아래서도 변함없이 말씀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인애 권사다. 참평안 취재팀이 이인애 권사를 호주 시드니에서 만났다. 가능한 한 구어체로 이 권사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옆에서 생생하게 들려주는 듯한 교회 초기 역사들을 들어보시기 바란다.

권사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지요?
우리 나이로 95세, 1913년생이에요.

신앙생활은 언제 시작하셨나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수님을 믿으셨지. 그렇지만 우리 아버지는 교회를 잘 안 다니셨어.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어서 돌아가실 때도 딸들에게 계속 찬송가를 부르도록 하셨지. 찬송가를 들으시면서 편안하게 가셨어. 막내 삼촌은 능곡교회 장로님이었지. 나는 어려서부터 주일학교에서 시작해서 신앙생활을 했어. 시골 교회라 풍금이 없어서 풍금을 사려고 연극을 해서 모금을 했었어. 나는 키가 커서 천사 역할을 했지. 돈을 모아서 풍금을 샀는데 풍금 사던 날 시집을 가는 바람에 풍금을 배우지는 못했어.

권사님이 여자로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학교를 다녔다면서요?
일제 시대인데 우리 동네에서 여자아이로는 나만 학교를 들어갔어. 동네 사람들이 야단이었지. 어떻게 저 집은 딸을 학교에 보내느냐고. 그 때는 여자가 학교 가면 큰 일 나는 줄 알던 시절이었어. 내가 학교 들어간 지 2년이 되니까 생각들이 바뀌어서 여자 아이들도 학교를 보내기 시작했지. 아무튼 내가 일산 공립보통학교에서는 여자로는 처음 학교를 간 거야. 능곡에서 기차를 타고 학교를 다녔어.

학교를 졸업하고는 뭘 하셨나요?
서울로 공부를 하러 가고 싶었는데 결국 기회를 놓쳤어. 그러다가 열 여덟살에 시집을 갔어. 우리 신랑은 잘 생기고 멋있었지. 그런데 가정을 잘 돌보진 않았어. 딸 하나를 낳고 집을 나갔어. 나 혼자 딸 하나를 길렀는데 딸이 6.25 전쟁 때 해군 장교를 만나서 결혼을 했어. 군인 사위 덕에 진해로 피난 와서 거기서 살았지.

난리 통에 내가 신앙생활을 안 하고 있었어. 그런데 딸하고 사위한테 얹혀살고 있으니 마음도 답답하고 그래서 옛날 신앙생활하던게 생각나잖아. 그래서 찬송가를 크게 불렀지. 그런데 지나가던 권사님 한 분이 그 소리를 듣고 문을 두드리잖아. 문을 열어주니까 ‘아니, 이렇게 찬송가를 잘 부르는 사람이 왜 교회를 안나오느냐’고 하는거야. 그래서 신앙생활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 때 우리가 살던 군인 관사 옆에 교회가 있었어. 목사님을 찾아가서 빈 방이 있으면 하나만 달라고 해서 거기서 지내면서 새벽이면 종도 치고 목사님 댁 물도 길어다 주면서 기도생활을 했지.

그렇게 신앙생활이 다시 시작됐군요
그렇지. 그러던 어느 날 간절하게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데 눈을 감으니까 벽에서 커다란 기둥이 나와서 불이 활활 타는 거야.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 눈을 뜨면 안 보이고 다시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또 보이고... 그 때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하면서 회개 기도를 했지. 하나님이 평생에 남을 만남을 주시려고 그러셨던 것 같아. 그런 일을 겪은 지 사흘 뒤에 박윤식 원로목사님을 만났어. 내가 있던 교회 목사님이 기도원에서 원로목사님을 만나서 우리 교회에 모시고 오신 거야. 원로목사님이 동마산에서 목회하실 때였지. 원로목사님이 내가 지내고 있던 방을 지나가시다가 ‘여기는 누가 있냐’고 물어보시더니 ‘아주머니 한 분이 사정이 있어서 여기서 지내신다’고들 하니까 찾아오셔서 나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고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함께 일하자고 하시더라구.

그렇게 원로목사님을 알게 됐는데 나중에 서울에 올라가서 목회를 하신다고 해서 나도 같이 올라가서 교회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 그 때 사위가 군을 제대해서 집에 군복이 많았어. 그걸 내다 파니까 딱 완행열차 차비가 나왔어. 그걸 타고 올라왔지. 당시 서울에 살던 우리 언니(이어진 권사)가 큰 부자였어. 언니한테 “유명한 목사님이 계신데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재물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마침 누가 돈을 빌려갔다가 가져왔다면서 돈을 주잖아. 그걸 가지고 가서 원로목사님에게 교회 개척헌금으로 드렸지. 아직 교회 건물조차 없을 때였어. 그리고 나서 나는 효자동에 있는 동생네 집에서 지냈는데 원로목사님이 밤이면 기도원에서 기도하시고 낮에는 동생 부부가 일하러 나가면 그리로 오셔서 성경을 가르치셨어. 그러면 그 자리가 부흥회가 되는 거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하더라구. 그러다가 수색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하셨는데 거기서 여운초 목사님을 만났고 지금은 미국에 계신 전극화 선교사님 댁에서도 성경공부를 많이 했었지. 아침만 되면 그 집에 모여서 성경공부를 했어. 후암동에 있는 권사님 댁과 종로의 권사님 댁에서도 모였었고.

평강제일교회 역사가 그렇게 이어진 거군요
일단 성경공부를 하고 가면 그 다음에 그 사람들을 통해서 다시 몇 사람이 전도돼서 오고, 줄에 줄을 이어서 왔었어. 정말이지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은 와서 듣고는 성경 말씀을 사모해서 모이고 또 모였었다구. 그렇게 모여서 공부하고 나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쌀을 가져와서 같이 밥도 지어먹고, 또 은혜를 받았으니 산에 가서 철야기도 하고, 그리고 아침이면 또 모여서 성경공부하고... 정말 그 때 은혜 받은 건 말로 표현을 다 못하지. 그때 함께 성경공부를 했던 청년들이 몇 있었는데 그렇게 총명할 수가 없었어. 다들 성경에는 도사들이 됐었지. 그때는 청년이었는데 지금은 칠십이 다 된 노인들이 됐겠네.(웃음)

당시 재미있는 일화는 없었습니까?
그 때는 휴대폰은 물론이고 전화도 귀하던 시절이야. 교회 건물이 지어지기도 전이니 어찌 어찌 하다가 원로목사님과 연락이 끊겨 버리고 만 거야. 몇 해 동안 연락이 안됐는데 하루는 사촌 언니가 찾아왔더라구. 유명한 목사님이 있으니까 성경공부하러 가자고 야단을 떨잖아. 그래서 목사님 성함이 뭐냐고 했더니 박윤식 목사님이라는 거야. 한걸음에 따라가서 만났지. 그 사이에 작지만 교회 건물이 마련돼서 목회를 하고 계시더라구. 그게 일석교회야. 가서 인사를 드렸더니 원로목사님이 얼마나 반가와하시던지 몰라. 하하.

일석교회 시절은 어땠습니까?
그 때도 성경공부가 유명했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지. 서울 장안에 성경 말씀 사모한다는 사람들이 한 번씩은 다 다녀가지 않았나 싶어. 잠깐 하다 마는 사람도 있었지만 말씀대로 신앙생활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다 남았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었지만 정말 그렇게 성경적이고 깊이가 다른 성경공부는 처음이었어. 공부가 길어져도 더 하자고 했지, 길다고 불평하는 사람 한 명 없었어. 그때 은혜 받은 건 말로 다 표현 못해. 회개도 많이 하고... 날마다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 같았지.

그러다 교회가 노량진으로 옮겼죠?
그 때는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지. 정말 하나님이 날 살려주셨어. 겨울이었는데 밤새 연탄가스를 마신거야. 그 때는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는 사람이 많았거든. 생전 예배를 빠지지 않던 내가 예배시간에 보이지 않으니까 성도 몇 사람이 우리 집으로 날 찾으러 왔다가 쓰러진 걸 보고 병원으로 데려갔지. 병원에서도 살아나기 힘들 거라고 했었는데 기적적으로 깨어난 거야. 그때 우리 교회 성도들이 모두 찾아와서 마포 병원이 꽉 찼었어. 누가 입원했길래 문병객이 이렇게 많이 왔느냐고 병원에서 야단이 났지. 날마다 교회에서 한 식구처럼 지냈으니 서로서로 걱정이 될 수 밖에.

기도회도 많이 열렸었죠?
온 성도들이 함께 지리산이며 장안산으로 산상 구국 기도회를 많이 다녔어. 원로목사님은 나이 많은 사람들은 힘드니까 오지 말라고 하셨지. 그 때 내가 벌써 예순 살이 넘었었지만 그렇다고 안 갈 수 있나. 젊은 사람들 뒤에 숨어서 따라다녔지. 산에 오르려고 보면 나처럼 나이 많은 성도들이 와 있거든. 그러면 원로목사님이 오지 말라는데 왜 왔냐고 야단을 치셨지. 그러거나 말거나 씩 웃으면서 열심히 산에 올라가서 기도했어. 젊은 사람들한테 처지는 법도 없었지. 내가 이 나이 되도록 건강하게 사는 게 기도하러 산을 많이 다녀서 그런 것 같아.

그런데 고국을 왜 떠나게 되신 거죠?
내가 여기 온지 23년 됐어. 1985년 여름 수련회를 마치고 8월 15일에 왔어. 결혼해서 호주에 살던 조카가 아기가 곧 태어나는데 봐줄 사람이 없다고 와 주실 수 없느냐고 하더라구. 교회를 떠나서 산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조카 부부가 하도 간청을 해서 교회의 어른인 원로목사님에게 상의를 했어. 그랬더니 얼른 가라고 하시잖아.

그 뒤로는 나만 보면 아직도 안 갔느냐고, 얼른 가라고 재촉을 하시더라구. 여름 수련회만 마치고 가려고 연수원에 앉아 있는데 원로목사님이 오시더니 ‘내가 보내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말라’고, ‘한 명이라도 해외에 나가서 말씀의 터전을 잡으면 좋지 않으냐’고 그러시더라구. 그렇게 호주에 와서는 아이 키우느라고 성경 읽을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테이프 성경을 보내주시기도 했어.

그 해 9월 6일에 조카네 손녀가 태어났지. 신앙의 열정을 다해서 키웠어. 우유 먹이면서 항상 기도하고... 얼마나 똑똑하게 자랐는지 몰라. 손녀는 시드니 대학 졸업하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그 뒤에 태어난 손자도 시드니 대학에 다니고 있어.

호주에 와서도 성경을 꾸준히 읽으셨다구요
지금 107번째 봐요. 아이들을 기를 때는 잘 못 보다가 크고 나서는 많이 봤지. 올해는 7번째 보네. 집에 있으니 아침이고 저녁이고 성경을 보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매일 성경을 보고, 설교 테이프를 듣고 또 듣고, 또 평강제일교회 주보며, ‘참평안’지를 읽고 또 읽어. 몸은 떨어져 있지만 늘 마음으로는 함께 한다구. 얼마 전 ‘참평안’에서 12명 장로 임직 받은 기사를 보고는 예전에 내가 권사 임직 받을 때 생각도 나고 교회가 크게 부흥한 걸 보니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워서 혼자서 울기도 하고 그랬지.

95세인 지금도 안경을 안 쓰고 성경을 보신다는데 원래 눈이 좋으세요?
전에는 눈이 나빠서 안경을 썼었지. 그런데 노량진에서 교회에 가는 길에 안경 알 하나가 빠져버리잖아. 안경을 고치고 교회에 가면 예배에 늦을 것 같아서 그냥 가서 성경을 보는데, 아니 글씨가 환하게 다 보이잖아. 그때부터 안경을 벗었지. 깜짝 놀랐어.

기도생활은 어떻게 하시나요?

1999년도에 한국에 갔었어. 그간 내가 침체되어있었구나 느끼고는 새벽기도를 시작했지. 새벽에 잠을 깨면 찬송하고 꼭 기도를 드리지.

원로목사님이 쓰신 구속사 시리즈를 처음 보셨을 때 어떠셨나요?
그동안 원로목사님이 일부 사람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으시고 고초도 많이 겪으셨는데, 이제는 오해도 풀리고 합당한 대우를 받으시는구나 하는 맘에 너무 기뻤지. <창세기의 족보>를 첫 장부터 마지막 288쪽까지 한 글자도 안 빠지고 다 읽었어. 읽다가 보니 너무 좋아서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밤을 새며 읽었지. <잊어버렸던 만남>도 계속해서 보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이인애 권사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교역자는 “권사님이 <창세기의 족보>를 처음 대하셨을 때에 얼마나 기뻐하고 감격했는지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이 권사는 책을 본 첫 날은 거의 밤을 새웠고 결국 이틀 뒤에는 응급실에 입원까지 했다고 한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하늘나라 가는 날까지 지금처럼 건강하고 평안히 있다 가는 거지. 야곱이 죽기 직전까지도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했잖아. 자세도 흩트리지 않았고... 그리고 서울에 한번 가보고 싶어. 여주에 연수원을 지었다는데 거기도 가보고 싶고, 이제 나이가 많아서 비행기를 태워줄지 모르겠네. 원로목사님도 참 보고 싶어. 하하하.
이인애 권사의 삶은 ‘초대 교회’와 연관이 깊다. 이 권사가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숙부가 장로로 봉사한 능곡 교회는 1893년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해 초대 당회장으로 시무한 역사 깊은 한국 초대교회다. 그리고 이인애 권사 자신은 평강제일교회에서 ‘초대 교회’의 한 모퉁이를 감당했다. 독수리가 날개 쳐 올라가듯 나이가 들수록 더 강건하고 젊어져서 변화를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길 기도드린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3:1-2)

* 글·사진: 호주 시드니 = 참평안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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