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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세 고방덕 권사의 천로역정(天路歷程)
 글쓴이 : 관리자
 



지난 3월 17일 주일 2부 예배 때 들은 106세 고방덕 권사의 이야기는 많은 성도들을놀라게 했다. 우리 교회에 등록했을 때가 75세. 2004년 97세 때 권사로 임직(任職)됐고, 어느덧 백수(白壽)를 넘어 106세. 우리 교회 최고령 권사다.
박윤식 원로목사는 31년 전 고 권사를 처음 만났을 때 “할머니, 좀 일찍 교회에 나오셨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했더니 고 권사가 “걱정 마세요. 나 100살 넘어 까지 살거예요”라고 답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고 권사의 두 딸인 김봉애, 김선희 권사에게 고방덕 권사의 천로역정을 들었다.




“여기 교회가 어디 있나요?”
고방덕 권사는 17세에 결혼해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성공한 남편 덕분에 생활은 순탄한 듯 보였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둘째 아들의 죽음. 예방주사 맞히러 갔던 병원에서 아들은 쇼크사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엄마가 너무 큰 충격을 받으셨어요. 주변 사람들이 자꾸 귀신이 아들 잡아갔다고들 했대요. 엄마는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영접하셨어요.”
해방과 동시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돈 될 만한 모든 물건을 도둑맞았고, 일본에서 형이 보내준 돈으로 대궐 같은 집을 지은 배다른 동생은 등을 돌렸다. 남편의 건강은 악화됐고 하루아침에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서울로 올라와서는 이웃들에게 교회가 어디 있는지부터 물어봤다. 교회를 찾아서 나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성당이었다.

남편의 아주 특별한 유언
부부의 믿음은 진실했다. 남편은 성경을 종이가 닳아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읽었다. 일본에 있을 때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직원으로 쓰고 형편이 어려운 재일교포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늘 선한 일을 했다. 고 권사는 매일 성당 첫 미사, 즉 새벽예배를 드린 후 일과를 시작했다. 주일에는 일을 쉬고 온전히 주일을 지켰다.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시절인데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지나치질 못하고 집으로 모시고 와서 성당에서 데리고 갈 때까지 이틀이고 삼일이고 뒷바라지를 했다.
“저희는 어릴 때니까 거지 왔다고 숟가락부터 감춰놓고 그랬지요. 냄새도 나고 싫었는데, 엄마가 아주 여러 명을 모시고 왔던 기억이 나요.”
죽음을 앞둔 중환자들을 돌봐주는 봉사도 했다. 환자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많이 목격했던 고 권사는 평소 남편에게 ‘당신은 거짓말 안하니까 당신에게 죽음이 찾아올 때는 얘기를 해달라.’고 농담처럼 얘기하곤 했다. 어느 날 그 말이 현실이 됐다. 죽음의 징조를 느낀 남편은 자녀들에게 아주 특별한 유언을 가슴 깊이 새겨준 뒤 ‘흰 옷 입은 아기 천사 둘이 나를 데리러 왔다’며 가족들 품을 떠나갔다. 남편의 유언은 가족들을 말씀 앞으로 인도했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와야 한다. 성공적인 삶이 뭔지 아느냐? 명예도 권력도 재물도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똑바로 배워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다. 그래야 아버지도 만날 수 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 보고 나가야한다. 사람 보면 실족한다 하나님 말씀만 보고 나가거라. 알겠느냐.”
‘말씀’이란 표현조차 생소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유언을 통해 강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큰 딸 김봉애 권사가 먼저 평강제일교회에 등록을 했고 뒤이어 고방덕 권사와 작은 딸 김선희 권사가 속속 평강의 가족이 됐다.

“엄마, 제일 행복한 때가 언제에요?”
매일 새벽미사를 드린 뒤 도매시장에 나가 야채며 새우젓을 떼다 팔면서 자식들을 키워낸 고 권사의 부지런함은 평강 가족이 된 이후 더 빛을 발했다.
“70대 중반을 넘긴 연세였는데, 새벽 4시면 일어나서 6시에 아침 드시고 교회에 나와 식당 봉사를 하는 걸 최고의 낙으로 여기셨어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는 장안산 기도회를 다녀왔다. 정상에는 안 올라가고 산 밑에서 기다리겠다고 자식들과 단단히 약속을 하고 갔는데 몰래 산에 올라가버렸다. 김봉애 권사는 “올라가면서 누가 수풀에 앉아 있으면 엄마 아닌가 확인하느라 저는 거의 꼬리로 정상에 올랐어요. 그런데 엄마가 비탈에서 내려다보고 계신 거예요. ‘난 이미 기도처까지 갔다 왔다’시면서. 다리가 너무 아파서 엄마 다리도 좀 주물러드리려니까 ‘나는 하나도 안 아프다’며 ‘또 갔다 올 수도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90세가 넘어서도 기독 3사관학교를 수업 한번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졸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97세 되던 해 권사임직을 받았고, 성경공부 시간에는 필기는 못해도 듣기라도 해야 한다고 아무리 험한 날씨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100세가 되던 해에 자식들이 “엄마, 제일 좋을 때가 언제예요?”라고 물으니, “교회 오는 게 제일 행복하다”며, 생애 가장 기쁜 일은 교회에서 식당 봉사를 하던 때라고 고백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교회 오기가 꾀가 나면 자녀들은 엄마 생각을 한다.

“변화하는 성도의 1호가 되게 해 주세요”
고방덕 권사는 지금 부천의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자녀들은 병원에 갈 때마다 “살아계신 자체 만으로도 하나님 아버지 영광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변화(고린도전서 15:51)하는 성도의 제 1호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
“엄마의 믿음 속에는 ‘죽음’이 없는 것 같아요.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모든 죄를 다 걸머지고 부활까지 해주셨다는 걸 항상 확고하게 믿고 계시거든요.”
고방덕 권사의 주민등록번호는 080303으로 시작된다. 1908년생인 고 권사의 손자 중에는 2008년생도 있다. 지난 부활절에는 5대손이 세례를 받았다.

글_ 참평안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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