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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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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글쓴이 : 관리자
 

창세기 3장 말씀을 볼 때,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 금하신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불순종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사망이 들어왔지만 예수님 한 분의 순종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로마서 5:12, 18). 이렇듯 전 인류가 사망권 내에서 벗어나려고 오만가지 힘을 다 썼지만 되는 일이 없었는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의 모든 죄를 홀로 걸머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들과 제사장들, 서기관, 유사, 장로들과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비밀을 몰랐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때문에 먹고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는 광야에서, 들판에서, 바닷가에서 2만 명 내지 3만 명이 모였습니다. 반면,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는 가지 않고 헌금도 하지 않으니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4복음서에 낱낱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생각할 때, 마침내 불의, 어둠의 권세가 잠시 승리한 것 같지만 그 내용을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인류를 구원함에 있어 사단을 속이는 한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100번 죽이면 101번 만에 살아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요, 부활 자체, 영원한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겸한 분으로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지만 영으로는 이미 살아계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무덤 속에 계실 때도 세인(世人) 모양으로 땅 속에서 숨을 못 쉬고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라 노아 때 죽은 영들에게 가셔서 전도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3:19-20). 그리고 3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트리시고 오늘 아침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4장이나, 마태복음 28장, 마가복음 16장, 요한복음 20장 말씀을 볼때, 세 여자가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러 갔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돌아가셔서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했는데 수십 명이 돌로 무덤을 막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시의 대제사장, 오늘날로 말하면 총회장 이하 노회장 목사들이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유혹자(예수님을 보고 유혹자라고 했습니다)가 살았을 때, 내가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난다고 했는데 만일 예수님의 시체를 주님의 제자들이 도둑질해놓고 살았다고 하면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이 임하니 로마 군인을 배치하고 큰 돌로 막아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누구도 굴리지 못하게 빌라도 총독의 도장을 찍어 돌로 무덤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세 여자가 찾아가 보니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져 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이에 누가 훔쳐간 줄 알고 여자들이 우는데 두 천사가 아주 찬란하고 빛난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창검을 가지고 지키고 있던 로마 군인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혼비백산, 기절초풍하여 땅에 엎드러졌습니다(마태복음 28:4). 그렇게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자신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겁이 나 빌라도 총독과 대제사장, 종교 지도자들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교회의 돈을 조금이 아니라 한 뭉치로 보초를 섰던 군인들에게 갖다 주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봤다는 얘기를 하지 말고 우리가 자는 사이에 누가 훔쳐갔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에는 지금까지 그 풍설(風說)이 돌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천사들은 여자들에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물었습니다(누가복음 24:5-6).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십 번, 사람의 손에 잡혀서 억울하게 재판을 받고 죽지만 내가 3일 만에 살아난다고 하셨는데, 왜 갈릴리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열한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당시 종교 책임자들은 예수님이 살아나신다는 말씀을 믿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가서 무덤을 지켜달라고 했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주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 때문에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부활은 우리를 부활시킨 다음에 너는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 선언하시기 위함입니다(로마서 6:4-5). 그래서 오늘 부활절은 전 인류가 어느 곳에 있든지 춤을 추고 “아멘! 할렐루야!”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죽으면 끝인데 죽었다가 살아나는 산 소망을 주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느 종교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까? 석가도 마호메트도 무덤이 있고, 공자와 맹자도 다 무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기독교만이 무덤이 없습니다. 참 인류가 사는 길인 것입니다.

천하를 다 가진다 해도 죽으면 끝입니다(전도서 9:4). 인류에게 이러한 소망을 주셨는데 기뻐하고 살맛이 나야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며 걱정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해결만 된다면 한숨을 쉬지만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의 모든 짐과 행사, 염려를 다 나에게 맡기라고 하셨습니다(시편 55:22, 잠언 16:3, 베드로전서 5:7).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맡겨야 할 텐데 맡기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서는 “주여” 기도하고 맡기지만, 축도가 끝나면 맡긴 것을 도로 찾아갑니다. 이것이 인생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부활하셨습니까?

첫째, 자기 자신이 진리임을, 참임을,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요한복음 6-8장, 14장).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물으십니다(요한복음 11:25). “네가 이것을 믿느냐?” 오늘 평강제일교회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과 똑같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진짜 사셨을까, 안 사셨을까?’ 하나님의 말씀이 참임을 입증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둘째, 영광을 받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1:21).

예수님은 오늘날까지 이 땅에 오셔서 고생만 하시고 이단이니 사기꾼이니 유혹자니 별얘기를 다 들었습니다. “학교도 안 가서 글도 배우지 못했고, 가난하기가 짝이 없고, 목수의 아들이다.” 땅의 좋지 못한 말은 예수님께 다 갖다 붙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영광을 받으셔야 할 것 아닙니까.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말씀하십니다(베드로전서 1:21). 내가 영광을 받았으니 나를 믿는 너희도 영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이제 아버지께로부터 영광을 받으십니다.

셋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부활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5:20).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나무에 열매가 100개 달린다 할 때, 100개가 다 같이 익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먹음직하게 벌그스름한 열매가 있는데, 그 첫 열매가 예수님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열매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죽지 않고 사는 생명체임을 가르쳐 주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넷째, 우리가 거듭나게 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1:3-4).

우리에게는 정직이나 성실, 거룩함이나 경건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못된 생활, 말도 함부로 하고, 생활에 규모가 없고, 질서가 없는 것을 고쳐주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고린도전서 14:33). 그러니 우리 모든 생활에 규모가 있고 참 정직하고 성실하고 하나님을 믿되 진실하게, 가식이 없이 거듭나게 하기 위해 부활하신 것입니다(요한복음 3:3-5). 믿지 못하면 믿지 못한다고 하고, 믿으면 믿는다고 해야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오만욕설을 다 하면서 안 그런척 한다면 그것은 외식이요 형식이요 가식입니다(마태복음 23:1-39).

다섯째,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로마서 3:24, 4:25, 5:9).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의롭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재판장이‘무죄’ 혹은 ‘징역 6개월’하고 선언하듯이 영원한 재판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부활 후 하나님의 영광의 권세 자리에 가시면서 “나를 믿는 자에게는 죄가 없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로마서 8:1). 마음을 푹 놓고 안심하고 하나님을 믿으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심을 주기 위해 예수님이 오늘 아침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고린도전서 15:17-18).

여섯째,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로마서 6:4).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죽으셨다면, 우리도 믿음으로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2:20). 그러니 주님의 부활은 주님 혼자만의 부활이 아니라 우리도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로마서 6:4- ).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예수님의생명은 썩어빠진 낡은 생명이 아니라 새 생명입니다. 언제나 생수가 활천 같이 터져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활이요 영원한 생명입니다(요한복음 11:25).

일곱째, 우리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요한복음 10:10).

예수님은 늘 풍성하십니다. 예수님은 고여 있는 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늘 활천(活川)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4:14).

여덟째, 우리 죽을 몸도 살린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로마서 8:11).

말로만 내가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 죽을 몸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견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시는 것입니다(로마서 8:11). 죽을 몸, 썩고 쇠하고 냄새나는 몸까지도 살리십니다(요한복음 11:39). 주님이 재림하실 때 혼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부활시켜 같이 데리고 오십니다(데살로니가전서 4:16-17).

아홉째, 산 소망을 주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1:3-4).

산 소망은 거듭난 생명입니다. 도둑질하고 사기 치는 생명은 썩어질 생명, 지옥에 갈 생명, 유황불에 들어갈 생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때, 이제는 죄와 상관이 없는 거듭난 생명, 썩지 않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쇠하지 않는 생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려면, 우리에게서 예수님의 향기가 나야 됩니다(고린도후서 2:15). 이제까지는 여러분들이 내 아내와 남편, 자식들을 위해서 열매 맺기를 애썼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붙잡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로마서 7:4).

열째, 당신의 말씀을 입증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심부름을 하던 역대 선지선열들, 의인들을 심히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쳤습니다(마태복음 21:33-39). 하나님은 주님을 위해서, 교회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죽은 순교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세마포 흰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순교의 수가 찰 때까지 조금만 참으라고 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6:11). 그러면 성경 말씀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로 말미암아 사단이 아무 소리 못하게 그 입을 봉하셨습니다. 성경 말씀, 역대 선지자들이 말한 것이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마지막 최후 부활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3-4).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예수님의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요한복음 2:22)


성경은 부활을

네 단계로 설명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고린도전서 15:23).

둘째,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죽었다가 부활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4:16).

셋째,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합니다(고린도전서 15:51, 빌립보서 3:21).

인류가 다 죽은 다음에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징조가 나타납니다. 경건하게 잘 믿는 사람은 죽지 않고 순간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굼벵이나 매미는 껍질을 벗을 때 한참 걸리지만, 변화는 순식간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수님을 믿다 죽어서 땅 속에 들어갔다가 마지막 날 부활하기보다도 살아서 변화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죽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죽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입니다(갈라디아서 2:20). 이를 100% 믿어야 합니다.

내 남편과 내 아내, 사랑해서 낳은 자식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을 그렇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영육 간에 완전한 변화입니다. 밥이나 물도 먹지 않고, 화장실에 갈 필요도 없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고 예수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셔도 믿지 못합니다. 믿지 못하니 예수님의 부활도 듣긴 듣지만 실감이 안 납니다. 저는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인자가 오기 전에 마지막 감추었던 말씀을 주십니다(베드로전서 1:13). 그 말씀을 주시는 순간, 받는 순간, 순식간에 변화되어 갈 사람들이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5:51).

넷째, 마지막에 선악 간 심판을 받습니다(요한계시록 20:12-13).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복음 5:3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우리 가문이나 족보, 선조들을 보면 전부 다 사신 우상에게 절하고,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 않았지만(에베소서 4:22-),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듣고 눈을 뜨게 하셨으니 얼마나 복입니까. 이제는 여러분들이 나라가 몇 번 망하고, 사업이 뒤집어엎어지고, 가족 간에 헤어진다 해도 하나님을 믿어야 살 것 아닙니까.

오늘 예수님께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물으실 때, “아멘! 주 예수여! 내가 믿나이다!” 고백하는 여러분과 모든 가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년 4월 8일 부활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