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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2009년 4월호)
 글쓴이 : 관리자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마 28:1-15, 고전 15: 1-9 

 
창세 이래로 지구촌에 벌어진 가장 큰 사건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다 지시고 그 죄 값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으며, 부활하신 다음에 40일 동안 그 부활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리고 500명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부인하고 믿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120명이 오순절날 성령을 받았고 그들이 성령을 받은 이후로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고난을 당했지만,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부활을 보지 못했다면 그들이 그런 고난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대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땅을 밟고 사람 가운데 사신 분입니다.

주전 75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든 사건은 일점 일획도 빼지 않고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사53:1-12). 예수님께서는 ‘곤욕’을 당하셨습니다. 그 뜻은 곤할 ‘곤(困)’, 욕될 ‘욕(辱) ’으로, ‘심한 모욕’ 또는 ‘참기 힘든 어려움’을 뜻합니다.

히브리 원어를 보면 사 53:7에는 ‘나가쓰’라는 단어로 표현이 되는데 ‘부당하게 강제권을 발동해서 억지로 무엇을 하게 하는 것’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 53:8에 나오는 ‘오째르’라는 단어는 ‘완전히 에워싸서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시지만 인류의 죄를 다 지시고 인류의 죄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양손 양발에 못이 박히고,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살이 터지고 찢어지셨습니다. 등에는 채찍을 맞아서 뼈가 다 보일 정도로 패여서 밭고랑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어 내용을 볼 때 예수님께서는 짐승 취급을 받으며 곤욕을 당하시는 순간에도 “아버지 용서해 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달리기 전에 원수를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하신 첫 번째 말씀도 “아버지, 저들이 하는 일 몰라서 그러니 용서해 달라”는 말씀이었습니다(눅 23:34).

우리 모두는 다 죄인이므로 원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흔 번 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항상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남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마 18:35).

예수님은 생명 자체이며 부활 자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었고 우리의 부활을 위해서 부활했습니다(요 11:25-26). 부활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호’라는 정관사가 붙어있습니다. ‘그 부활’이라는 말속에는 예수님만이 ‘그 부활’이며‘그 생명’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의 내용이고, 생명의 본질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에게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시니, 죽었던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어 가고 있는 나사로에게도 “나사로야 나오라”호령하시니,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은 생명 자체로, 사망을 향해 호령하시는 분입니다.
기독교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도 ‘열조와 함께 자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무덤이 없습니다. 그것은 무덤이 아니라 부활을 기다리는 ‘집’입니다.

부활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입니다(고전 15:20).
두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들입니다(고전 15:23).
‘그에게 붙은 자’란 예수님께 속한 자, 예수님의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두 번째 단계의 사람들에겐 반드시 거듭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거듭남도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이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에 거듭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부활의 단계에 꼭 있어야 하는 필수적 요소입니다(벧전 1:3).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냐고 하며 참람하다고 하였습니다(요 10:30-). 만 인간들은 예수님을 가짜라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는 결정적이고 유일한 증거가 되었습니다(롬 1:4,고후 13:4, 엡 1:19-20, 빌 3:10).

산 자에게도 주가 되고 죽은 자에게도 주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산자’는예수님믿으면서현재살고있는사람이고, ‘죽은자’는예수님을믿고무덤에서잠자고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죽은 자의 주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죽었다가 살아나심으로 인해 죽은 자에게도 주가 되셨습니다(롬 14:7-9).

마지막 때는 순간 변화합니다. 사망이 왔다가도 말씀의 권세를 보고 도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을 몸이 죽지 않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늘 내세를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소원은 그 나라 갈 때까지 오직 선한 일에만 힘쓰는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는 것입니다(딛 2:14).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가슴 깊이 뜨겁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흰 눈같이 희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되며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고전 15:17-18).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롬 4:25).

우리를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로는 새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와 주셔야 되고 은혜가 와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어야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새 생명은 부활생명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요 11:25). 나약하고 모자란 생명이 아니라 언제나 능력이 있는 풍성한 생명입니다(요 8:51-52).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했던 사렙다 과부의 집에는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고 날마다 풍성했습니다.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기력이 상실되고 늙어가지만 예수님 안에는 늘 새로운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새 생명은 부활생명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나약하고 모자란 생명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풍성한 생명입니다.


우리의 죽을 몸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안에 거하시면 우리의 죽을 몸도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게 됩니다(롬 8:11).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에게 친히 와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늘 애쓰시는 분입니다(고후 11:1-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의 몸으로 형체를 이루기 전부터 미리 다 아시며 작은 솜털까지 다 세시는 분입니다(시 139:16). 그런 분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기 이전부터 우리를 절대적인 예정으로 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게 되어 있는 몸이고 썩을 몸이지만 사망을 호령하심으로 우리를 죽을 몸에서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산 소망이 있게 합니다(벧전 1:3). 세상의 높은 지위와 권세가 있다고 해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세상의 기업은 성취하면 할수록 허공에 뜬 것같이 허전한 마음뿐이고, 아무리 애써도 만족과 소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늘의 기업을 위해서 늘 일하는 사람이고, 모든 것을 하늘나라에 저축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썩지 않을 영원한 기업을 준비해 두셨습니다(벧전 1:4). 하늘의 기업에는 산 소망과 썩지 않는 새 생명이 있습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영원불멸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말씀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나에게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천국에 입성하는 날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기업을 다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08년 3월 23일 부활주일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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