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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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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면 아무 것도 없고, 있으면 모든 것이 있습니다 (2009년 2월호)
 글쓴이 : 관리자
 



| 잠14:4 |


오늘 본문은 믿는 성도에게 수고와 땀 흘림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가 깨끗합니다. 그러나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소는 ‘근면’을, 구유는 ‘수고, 고통’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수고와 희생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투자가 있어야 소득이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수고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 잘 때 자지 않고 기도하고, 찬송 부르고, 헌신, 봉사하고 건강한 몸 주신 거 감사하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생활도 많이 포기해야 합니다. 남보다 좋은 믿음을 갖고자 원한다면 그만큼 더 노력해야 하며, 인생을 건 전력투구가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 보면 대부분이 “없다”, “모자란다”고 아우성치는 소리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시간이 없다 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시간을 주셨고, 헌금할 돈이 없다는 사람에게도 물질과 재물 얻을 능력과 건강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령한 축복도 힘쓰는 자가 찾아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마 1:12). ‘소’는 희생과 충성을 상징하는 말씀이기에 이 말은 성실과 근면한 노력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마음만 먹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근면’의 말뜻은 부지런할 ‘근’, 힘쓸 ‘면’자입니다. 매사에 맡은 일에 부지런하고 힘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소같이 근면하게 일해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는 풍요로운 수고와 고통, 그리고 희생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은 희생, 고통, 수고가 따르지 않으면 능히 감당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믿고, 붙잡고, 행할 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약 2:17).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앞에 놓인 수고를 보지 않고 수고 너머에 있는 이로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고 어떻게 열매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피나는 노력이 없이 어떻게 각 분야의 정상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오늘 주신 말씀은 노력을 강요하시는 말씀입니다. 전부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 노력을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신의 생활에 쏟아 붓는 노력만큼 하나님께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딛 2:14, 엡 2:10).

사람이 게으르게 되면 그 마음에 부패와 죄악이 발생하여 마침내 망하게 만듭니다. 신령한 축복도 노력하고 애쓰는 자만이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노력해야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짐승 중에 소를 들어서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신 25:4절에 보면‘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하셨습니다(고후 9:7). 이는 우리의 노력이 더욱 중단되지 않도록 더욱 근면의 채찍으로 채찍질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갈 6:7)고 함으로써 심지 않으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즉 없으면 없다는 말입니다. 심어야만 있습니다.
우리가 여태껏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에는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했습니다(히 11:6). 또한 바울은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라고 말씀했습니다(롬 14:23). 기도, 찬송, 헌금, 교회에 나오는 모든 행위들은 다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가 없으니 응답이 있습니까? 밤낮 무능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권능과 성령을 두루마기 입듯이 덧입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동안 ‘없어서 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솔직한 고백 속에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겠습니다. 거라사 지방에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기도가 없으니 능력도 열매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여태까지 하나님 믿으면서 진정한 기도가 있었습니까? 양심적으로 매일 하나님께 기도로 가까이 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기도가 없어서 일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세계에서는 없으면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기회, 회개의 기회, 찬송과 기도와 돈을 버는 기회까지 다 주셨습니다. 시간도 주셨고 날도 다 주셨습니다. 힘쓰고 애쓰는 수고와 노력이 없이는 아무리 큰 금광이 눈앞에 있다 해도 단 한 돈의 금도 내 주머니에 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선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가장 복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요를 ‘누리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전 5:19, 6:2). 이 말은 오늘날 풍조처럼 흥청망청 소비하라는 뜻이 아니라 필요에 적절하게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이웃을 돕고 하나님의 선한 일에 소용되게 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라는 말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기회, 시간, 날을 소홀히 하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낭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겐 시간도, 기회도, 결국엔 몸도 다 날아갑니다. 젊음도 날아가서 어느덧 늙은 몸이 됩니다. 일하기 싫어하고 편한 것만 찾는 것, 그건 도둑이며 강도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안일주의 사상은 나의 복을 빼앗아 가는 도둑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일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기독교는 일하고 노력하는 종교입니다. 사도 바울은 80세가 다 되어서도 장막 꿰매는 일을 했습니다. 그가 가진 건 실과 바늘 뿐 이었습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않고 일했으며 셋집을 얻어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밥을 해 먹이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행28:28-31). 사도 바울은 죽기까지 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의 생애는 움직여야 됩니다. 일하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은 곧 죽음과 같습니다. 나태함은 가난과 파멸의 족쇄입니다. “만일 마귀가 무위도식하는 사람을 본다면 자기의 사업장에 채용한다”는 말이 성경외경에 나와 있습니다. 즉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 이것이 참된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창고가 비었다는 저주의 말씀입니다. 깨끗하다는 말은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노력(소)이 없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외국 속담에 ‘태만은 가난의 어머니요 악마의 베개’라는 말이 이 상황에 적합한 말입니다. 인간의 생애는 움직임이며 정지는 곧 죽음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소처럼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를 선용할 때 모든 것이 넘치는 축복이 주어지게 됩니다.

있으면 모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씨가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수고하는 과정이 있어야 얻는 결과가 있습니다. 만사가 심은 원인이 있고 열매를 맺게 하는 과정이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수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람이 불어서 영글게 하고 비가 오게 해서 자라게 해 주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부흥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오직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만 의지하고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기도하고 애쓰는 목사님들과 장로님들, 그리고 성도님들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그리스도인은 주인의 일을 위해 힘을 쓰는 자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매사에 부지런히 힘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목해 주십니다. 예배드리기 위해서 부지런히 교회에 나오는 사람, 하나님 말씀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공부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절친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수고가 있을 때 열매가 있듯이, 믿음으로 모든 것이 “있다”하고 받아들일 때 모든 것이 있습니다.

한국 속담에 ‘벼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명예나 지위, 물질, 믿음의 소유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인내와 수고와 마음고생을 통해 얻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부지런한 사람을 주목합니다. 하나의 말씀이라도 놓칠세라 부지런히 말씀 받고 예배드리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부지런한 자였습니다. 백 살에 얻은 외아들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바쳤고, 그로 인해 믿음과 행함에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피나는 노력과 수고와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와 계약을 맺어 주셨습니다(느 9:7-8). 그리고 하나님의 벗으로 삼아 주셨습니다(사41:8).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충성’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면 아브라함 같이 믿어야 합니다.

“예민한 두뇌와 근면한 손을 가진 사람은 도처에서 금이 쏟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얻기를 원한다면 근면과 부지런함과 희생이 있어야 됩니다. 무엇을 얻기 원한다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지런하고 근면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들입니다. 창조의 근원 되시는 말씀을 우리 인생들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목해 주십니다.
예배드리기 위해서 부지런히 교회에 나오는 사람,
하나님 말씀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공부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절친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고전 10:31).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헌신했습니다. 바울에게는 예수님 앞에서 퇴보가 없었고 절대 전진만이 있었습니다.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주관하라.”이것은 인류의 시조 아담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창 1:28). 이 세 가지 축복을 받을 자, 즉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절대로 노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우주를 우리 인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능히 가능성이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주관하는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를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권세 있는 말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받은 자는 이미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없으면 아무 것도 없고, 있으면 모든 것이 있습니다.

2002년 12월 1일 주일 2부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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