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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한 움큼 양식의 기적_추수감사주일 (2008년 11월호)
 글쓴이 : 관리자
 


겨우 한 웅큼 양식의 기적

왕상 17:8-16


이스라엘왕 오므리의 아들인 아합 왕은 사마리아에서 22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시돈 왕 옛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했는데, 부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종을 모두 잡아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아합 왕가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일국의 왕인 아합은 농부의 포도원,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죽게 만들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아합왕에게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낱낱이 다 알려주신 내용을 가지고 엘리야 선지자는 조정백관들 앞에서 아합왕의 비참한 말로를 이야기했습니다.죽어도 비참하게 죽고 개가 왕의 피를 핥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이세벨에게는 낭떠러지에 떨어져 머리와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아합왕의 왕자 70명의 머리를 달구지에 담아갔습니다.(왕상 21장-22장, 왕하 9장-10장).
엘리야 선지자 역시 비운의 선지자입니다. 아합왕의 죄값으로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을 때 엘리야도 그 한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릿시냇가에 숨었는데 그 곳의 물 역시 말랐습니다. 이 때 엘리야가 간 곳은 사르밧 과부에게였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떡 한 조각을 요구하자 밀가루가 한 움큼 밖에 없으며, 모자지간에 먹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 역시 그 한 움큼의 떡을 바라보지 않았겠습니까? 그 모습을 바라보는 과부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요.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얼마나 야속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여자, 이방 여인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증거 할 때 믿을 가능성을 하나님이 보신 겁니다. 누가복음 4장 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사르밧 과부에게 모내시지 않았습니까?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을 처음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믿었습니다. 한 움큼 먼저 대접하면 3년 6개월 동안 쌀 독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겠다고 이 말씀을 먼저 엘리야 선지자가 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아이는 울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에게 마지막 헌신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먼저 믿은 사르밧 과부
애굽에서 나온 200만 명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아무 근심도 하지 않고 그냥 밤마다 사방 백리에 20센티가 넘을 정도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절구에 찧기도 하고 굽기도 하고 삶기도 할 수 있는 만나 말입니다. 꿀 섞인 과자맛 같은 종합 영양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의 사람 말씀을 듣고 행하게 되면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아무 것도 없다고, 교회에 헌금할 돈도 없다고 합니다. 성경 말씀은 그림의 떡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고 실제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르밧 과부같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근심 걱정 없이 오직 하나님 사람의 말을 믿고 살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평강제일교회 성도가 모두 어렵고 가난하지만 개인과 가정마다 평안과 형통과 축복이 기적의 노다지처럼 쏟아지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해드립니다.
부잣집도 아니고 왕궁도 아니고 무슨 국장, 과장 집도 아닌, 외아들을 데리고 가난하게 사는 그 과부집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이, 그 과부집에 머물러 있는 동안 얼마나 복을 받았습니까?
그 아들이 나중에 병들어 죽었지만 말씀 믿었을 때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말씀 믿고 말씀이 머물러 있는 가정은 절대 망함이 없습니다. 못 믿어도 70-80년이고, 외손자-손녀, 자손만대 이 말씀의 축복이 가정에 머물러서 그 나라 갈 때까지 근심 걱정 없는 그러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4년의 기적을 일으킨 한 움큼의 기적
해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추수와 아름다운 단풍으로 마음은 풍요롭고 여유로 물들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마음에 부담이 됩니다. 가정 경제도 어려운데 교회에 안갈 수도 없고 다른 성도들은 드리는 헌금 안 드릴 수도 없고, 그래서 예배를 슬쩍 빠집니다.
우리의 심령을 헤아려보시는 하나님은 그 마음을 저울로 달아보십니다. 벨사살 왕은 저울로 달아 보았더니 부족하여 나라가 나누리것이라고 다니엘이 예언합니다(단5). 그리고 벨사살 왕은 하루 아침에 망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 마음이 겨울 얼음 동산같이 얼어붙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추수 감사절의 감사함보다 걱정이 앞선다면 되겠습니까? 오늘날까지 바은 은혜, 햇빛, 달빛, 바람,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내가 건강하고, 남편이 건강하고, 사위 며느리 건강하고, 그냥 편안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을 수 없습니다.
감사보다 걱정이 앞서는 가운데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는 그런 분이 있다면, 사르밧 과부같은 마음으로 이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복된 역사가 있기 축원해드리겠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심정을 다시 한 번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르밧 과부같은 헌신을 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밀가루는 내 눈에 보이고, 기름은 내 눈에 보입니다. 한 되박밖에 되지 않지만 먼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접하면 기적이 쏟아지는 말씀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헌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히브리 원어에 헌금은「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바치는 게 아니라 내가 다시 가지고 옵니다. 이러한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바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겁니다.
사르밧 과부는 한 움큼 가지고 3년 6개월을 산 것이 아니라 4년 6개월 동안 먹고 살았다면 믿어지시겠습니까? 농사를 짓고 다시 추수할 때 까지 1년은 더 있어야 하는 것인데, 가뭄이 3년 6개월을 동안 이어지고 또 곡식을 거둘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은 그렇게 충만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행동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엘리야의 명령은 너무나도 독선적(獨善的)이었습니다. 모두 무시했습니다. 아이가 배고픈 것, 사르밧 과부의 고민 모두 무시했습니다. 이행하기 어렵고 불순종하기 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명령대로 순종했고 행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서 마지막 밀가루를 긁어 모았을 때, 그 마음은 어땠을까요? 한 움큼의 식량이 4년 가까이 기적을 나타냈다면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변합이 없다고 히브리서 13장 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가 우선 입니다. 그 밖에 모든 것은 차선입니다. 내 손으로 한다고 할 때는 망하지만, 아무것도 없을 때 하나님께서 주인이 돼 시작해주십니다.
 
미래에 대한 먼저 감사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업솓다"(롬 8:18)
미래에 대해 미리 감사하면 어떻겠습니까? 천국의 영광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는데요. 학교 합격해야 감사하고, 일이 돼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감사입니다. 아브라함은 75살에 부모에게 인사도 없이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말만 믿고 떠납니다(창 12:1-4).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은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었습니다.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말도 안 하고 100세 때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해 모리아 한 산으로 갑니다.
아들 이삭이 "아버지, 나무와 불은 여기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아버지의 가슴에 비수를 찌른 것이었습니다. 3일 동안 걸어갈 때 그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하지만 산에 올라가서 아들을 묶어 칼을 들어 목을 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수양을 대신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처만인이 네 아들 통해서 복을 받는다"(창 22장)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사르밧 과부처럼 믿고 순종하고 행동하는 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한 끼 남은 식량을 드렸을 때 4년 먹을 식량을 받았듯이 추수감사절을 통해서 여러분 자손만대 축복이 떠나지 않는 산 역사가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또한 자원하는 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고 회개한 다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고 말입니다(시 51:9-10).
우리가 지금 비록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이 부족하다. 물이 부족하다 해도 한 움큼의 양식과 같은 지경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의 절망은 하나님의 형통으로 이어진다.
예수님이 죽기 까지 하면서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인색하면 안 됩니다.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다면 하나님께 인색하게 굴 수 없는 겁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아침부터 말씀을 전하실 때 며칠 동안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쌍했습니다. 양식을 좀 먹여야 할텐데...하고 말씀하실 때 빌립은 200데나리온이 있어도 부족하다고 했지만 안드레는 어린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안드레는 주님의 제자인 자신이 뜻을 받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이 감사기도를 드렸을 때 기적이 나타나 남자만 5천 명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어려울 때, 감사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려워서 감사할 수 없다!" 하지 말고, 오히려 더 큰 차원의 감사를! 한끼를 4년 동안 하나님이 책임진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없다!"고 할 때,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시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어~ 너 끝이구나! 이제부터 내가 시작할게!" 그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르밧 과부는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불평도 하지 않고, 핑계도 대지 않고, 아들이 울어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것 먹고 죽는 날짜 기다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하라는 말을 믿고 행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히 11:6), 과부는 믿음이 있었기에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앞서지 않고, 행동이 앞서는 순종의 삶을 사는 걸 볼 때 참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사람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사람의 절망은 하나님의 형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믿으리시기 바랍니다(롬 4:17, 고전 1:28, 히11:3).
사르밧 과부는 우리와 다른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가난했습니다. 우리보다 말씀을 더 받지 못했습니다. 기도생활을 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헌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은 감사의 천국이고, 천국은 감사의 언어가 충만한 곳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서 할 일은 오직 하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감사밖에 없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2년 추수감사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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