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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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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글쓴이 : 관리자
 

요한복음 20:19-29


예수님께서 부활절 저녁에 제자들에게 주신 축복과 사랑의 선물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신 말씀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시고 인격을 짓밟히시고 억울하게 불법 재판을 받아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예수님입니다. 태어나실 때도 방 한 칸이 없어서 말 여물통에서 나셨고, 평생 집 한 칸 없었던 예수님. 죽어서도 자기 무덤에 못 들어가시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을 빌려 매장되셨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예수님입니다. 그 분이 부활하신 저녁에 제자들은 며칠 전 성만찬을 치렀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얼마나 겁을 먹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잡히면 사형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문이란 문은 다 잠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소식을 접한 뒤 충격과 환멸과 좌절과 허무와 절망에 빠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갑자기 소경이 된듯 앞이 캄캄했습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3년 동안 만들어졌던 공동체가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순간 다 해체되고 이전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이고 날 믿으면 구원 받는다’ 라고 예수님께서 귀 아플 정도로 하셨던 말씀은 이미다 잊혀졌고, 자신들이 본 십자가 사건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남자 없이 성령으로 나신 것, 하나님 아들이시라는 것을 3년간 들어놓고도 마이동풍 격으로 ‘그런가보다’ 하고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 들은 말씀이 더 가까워야 할 텐데 말씀은 다 도망가고 예수님이 죄인처럼 붙잡혀서 처형당한 것만 머리에 꽉 차 있었습니다. 너무나 충격이 컸습니다. 천하가 동원돼서 위로해도 위로가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소리도 없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신것입니다. 인류에게 숙원이 있다면 평강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직장과 사업에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입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될 일도 안 됩니다. 마음이 바람 없는 호수처럼 잔잔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로 세상에 곤고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인천 앞바다의 파도 소리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바다입니다(요한계시록 17:15). 인류는 평강을 잃어버림으로써 바다처럼 출렁이고 철썩대며 안정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이 때 마음이 바로 그랬습니다. 두려움과 허탈함과 허무함에 빠져 예수님 따라다녔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 동안 사업을 했으면 돈이라도 벌고 자식들에게도 대우 받았을 텐데. 하나님 나라가 곧 이뤄진다고 집안도 돌보지 않았으니 이제 가족들도 나를 무시할 것 아닌가. 주머니에 돈 한 푼 없고 사후 대책도 없으니 큰 소리 쳤던 동네 사람들은 무슨 낯으로 대할까.’ 두려움과 공포에 짓눌리고 염려, 근심으로 병이 들 정도였습니다. 모두들 흩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모이자고 해서 모인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전에 함께 계실 때와는 다르게 빛나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두들 유령이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유령이 아니다 유령은 뼈와 살이 없거니와 나는 뼈와 살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영육이 모두 부활하는 종교, 죽지 않고 사는 영생의 종교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기 잡던 디베랴 바닷가로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생선과 떡을 준비해서 구워대접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마땅히 준비해야 할 텐데 오히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미 잃은 새끼들처럼 불쌍히 여기시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죽으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53장의 예언대로 잡혀서 심한 고초를 당하지면서도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하실 것을 이미 말씀하셨는데도 제자들은 다 잊고 있었습니다. 악인들은 기억하는데 정작 제자들은 기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모진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유순하고 아무 반항도 하지 않던 예수님, “아버지, 저들이 몰라서 그러니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시던 예수님. 사실은 십자가 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주님의 삶 자체가 사랑과 용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것입니다(요한일서 4:7). 사랑 중에서도 먼저 사랑입니다(요한일서 4:19). 

성탄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먼저 사랑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도와주고 잘해주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풉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번도 그런 대접을 받으신 적이 없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햇빛은 악인이나 선인이나, 죄인이나 의인에게 똑같이 비췹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속성입니다. 우리는 고향 사람, 동기동창, 직장 동료에게는 마음이 가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 파는 여자, 살인 강도, 죄인, 문둥병자를 향해서도 부모 형제와 똑같은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고 속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 배신하고 배역(背逆)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지막에는 능력과 권세 있는 말씀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을 아시고 찾아오셔서 그들을 믿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허탈과 공허로 칠흑 같은 밤에 싸여 있는 것조차 다 이해하신 것입니다. ‘3년 동안 나를 따라다니면서 얻어먹고, 수많은 기사와 이적, 문둥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린 것까지 다 보아 놓고도 나를 배신하느냐?’ 하며 괘씸히 여기시는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믿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실 뿐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부활 후 처음 주신 선물이 평강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사업에 마음이 편안치 못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돈이 없을 때는 돈만 많이 벌면 실컷 먹고 쓰면 소원이 없을 것 같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평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살기는 하되 지옥입니다. 평강이 없는 곳이 무덤입니다. 마음이 편하지 못한 사람은 송장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안은 두려움의 중병에 빠져있던 제자들에게 보약이고 특효약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전에도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고 말씀하신 바 있지만 제자들은 다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 말씀을 기억하고 믿고 있었다면 부활 후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평강에 대한 말씀을 또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예부터 “두루 편안하시죠?” 하는 인사말을 주고 받았고 유대인들은 “샬롬(평강)”이라고 인사했습니다. 모두 평안이 있기를 비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의 축복과 함께 육적으로도 위대한 축복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20) 하신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 곳에는 어둠이 있으려 해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빛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해도 하나님과 동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하늘이 진동할 정도의 천군천사의 합창 소리로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으면 그 평강이 우리의 삶에 밑천이 됩니다. 가족의 밑천이 되고 사업에도 밑천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바보처럼 돈만 찾고 든든한 배경만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둠을 불어 팽개치시면 어둠은 다 비켜나고 맙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 우리 가정에, 우리나라와 민족에 필요한 것이 평강입니다. 교회의 평강을 깨고 구역과 기관의 평강을 깨는 것은 마귀입니다. 멸망의 자식, 악의 자식입니다. 악인에게는 절대로 평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지만 마귀는 불화의 왕입니다. 성도가 저마다 평화롭게 진실하게 교회 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 불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장로와 목사가 싸우고, 권사들이 합심해서 장로를 내쫓고 목사를 내쫓는 것은 모두 마귀의 장난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없습니다. 누가 목사님 흉보면 성도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은혜와 말씀 충만으로 살려고 애쓰는 교회인데 왜 입이 험하냐’고 한마디 하면 흉보던 사람도 아무 소리 못합니다. 마귀는 싸움을 붙입니다. 불목하고 불화하게 만듭니다. 불화하면 등을 돌리고 눈을 흘기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고, 자기 성질이 못된 것을 고치려고 힘쓰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면서 은혜 가운데 평화롭게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위에서 성경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맡은 직분에 충성하며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곳이 우리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제 이름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는 첫째 하나님의 것이고 둘째 성도의 것입니다. 목사와 장로의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몰래 땅 사서 자기 이름으로 등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모든 재산이 교회의 이름으로 돼 있습니다. 다만 연수원에 딸린 전답은 교회 이름으로 등기를 못하게 돼 있기 때문에 여러 집사, 장로의 공동 명의로 돼 있습니다. 교회의 재산은 개인이 얼씬도 못해야 합니다. 저는 아들들에게도 목사가 되지 말고 장로가 돼서 각자가 속한 교회의 성도들의영혼을 책임지고 목사님 잘 받들고 교회 부흥에 앞장서라고 명령했습니다. 목사가 설령 잘못하더라도 목사를 내쫓는데 앞장서면 벼락 맞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불목하고 원수가 되면 피차 평안이 없습니다. 만나면 고개를 싹 돌립니다. 이것이 벌써 자신이 마귀이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상대가 나를 욕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웃음으로 대해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화목하십시오! 화목하십시오! 이사야 선지자는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이사야 57:20-21) 했습니다. 평안이 없는 사람들은 돈 벌겠다고 밤잠 못 자고 애쓰지만 결과는 흙탕물이 솟구쳐 오를 뿐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도 죄를 짓고 원수를 짓겠습니까? 이사야서 48장 22절에도 똑같은 말씀이 기록돼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평강입니다. 평강이 없으면 세계를 다 줘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평강이 없는 것은 말씀을 영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가까이 있는데도 받지 않고 도망갑니다. 끝없는 갈등 속에서 평화를 잊고 삽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져 주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中步者)로서 평강을 전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육적 평강과 경제적 평강, 영적 평강, 이 세 가지를 아울러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이사야 53:5)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는 목적을 이렇게 예언해 놓았습니다. 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이사야 9:6-7) 했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입니다. 말로만 평강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도 날마다 평강입니다. 이제는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 뭐라 해도 눈 깜짝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다 밝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교회는 남의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남의 말을 하면 심판 받습니다. 우리가 한 말은 아무 씨알머리 없고 내용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말한 그대로 심판 받습니다 (마태복음 12:36-37). 그저 하나님이 하지 말라면 하지 말고 믿으라면 믿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평강의 성도들은 남을 위해 기도해줄지언정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비판하고 평가하지 말기를 진심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면 “아멘” 하면 됩니다. 그 이상도 그이하도 없습니다. 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닭발처럼 헤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오리발처럼 긁어모으는 사람이 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가 죄 지은 것, 우리의 못된 성질 다 아십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피가 우리 마음을 적시면 못된 마음, 악한 죄들이 살얼음 녹듯이 다 녹아내려 없어집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을만하지 않습니까. 우편의 강도는 평생 갖은 죄를 지었지만 십자가 위에서 진심으로 회개할 때 낙원에 갔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평안이 없어집니다. 어지러움과 복잡함, 답답함, 죽음과 아픔이 가득해집니다. 이럴 때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노아 때는 마침내 홍수가 닥쳐 세상이 멸망했고 소돔과 고모라에는 유황불이 떨어졌습니다. 마지막 때는 불 심판이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위해서 불을 가둬 놓으셨습니다. 가둬놓은 불을 푸시면 전 세계가 불바다가 됩니다 (베드로후서 3:7).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들을 세상으로 보낸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후서 4:1-2)고 명령 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무서운 심판을 받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매를 맞더라도 전해야 합니다. 사람은 흥분해서 때리더라도 제 정신이 돌아오면 자신을 생각하게 되는 법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 매 맞고 울면서 기도한 것이 헛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분의 마음을 감동, 감화시키십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화를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9:16). 평강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한없이 받아 놓고 왜 전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오라고 하시기 전까지 전도에 열심을 다해 신령한 전도의 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이방에 보내셨습니다. “웃시야 왕도 죽고 마는구나” 탄식했던 이사야가 “제 입이 부정합니다”고 하자 걱정 말라 하시며 숯불로 그 입술을 정하게 하셔서 보내셨습니다(이사야 6:1-7). 그가 3년 동안 예수님이 당하신 일을 다 예언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시면서 그 가운데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사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옷도 입지 않고 맨발로 3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전에는 나와 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벌거벗고 말씀을 전하니 다 나와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구경했습니다. 이사야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여러분의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막고 있으니 회개하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이사야 20장). 

예수님께서도 우리 죄 때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하시고 벗은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면 빛난 세마포, 영광의 옷을 우리에게 입히십니다(요한계시록 19:8). 여기에 평강까지 주셨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제부터 평화롭게 살기를 노력하십시오. 우리 가정에 평강을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평강만 주시겠습니까. 평강을 유지하도록 물질의 축복을 주시고, 대들고속 썩이던 자식이 순종하는 축복을 주십니다. 평강을 받는 것은 경제적 문제, 자식과 남편의 문제, 이 모든 것에 평화, 평화, 평화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지금 우리 교회와 세계 교회는 4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교회 새로워지는 혁신 운동, 즉 말씀 운동이고, 종말이 임박했으니 뜨겁게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 읽자는 운동이며, 재림이 임박했으니 전도하자는 운동입니다. 예수님께서 평강을 말씀하신 뒤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22).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만드실 때 흙으로 만드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 지음으로써 효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넣어주신 것입니다. 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만난 소식을 전해주자 “나는 가시관 씌운 자리,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힌 자리, 옆구리의 창 자국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예수님께서 8일 지나서 다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만져보라 하시니 그제야 놀라 “주여 내가 이제 믿나이다”하며 땅에 엎드려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은 고집 부리던 8일 지각생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보고 믿지만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도마에게 성령을 주셨다는 말씀은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오묘한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 받아야 합니다. 시간 없다고 빠지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다음에 받겠다고 하면 큰일 납니다. 도마처럼 핑계 대며 빠지지 말고 말씀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기는 숨입니다. 숨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성령입니다. 120 문도와 12 제자가 있었지만 가룟 유다와 도마를 뺀 10명의 제자만이 예수님이 내쉬는 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도마는 뒤늦게 회개했지만 성령 받으라는 말씀을 듣지 못했으니 불쌍합니다. 열 두 제자의 하나였던 도마도 이렇게 됐으니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도마의 반열이 아니라 열 제자의 반열에 서서 성령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숨을 들이마시면서 성령충만히 받아서 죄악 많은 세상에서 모든 생활에 승리의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권세를 받아 그 나라 갈 때까지 이김의 역사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십시오. 평강이 보약입니다. 마음이 편해야 질병이 달아납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암과 오만 병을 불러들입니다. 예수님의 평화를 가지고 있으면 병이 다 달아납니다. 말씀의 권세와 능력이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야 합니다. 악하고 음란하고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영과 혼과 몸에 흠 없도록 노아의 가정 같이 경건하게 살다가 주님을 만나 영생 복락의 세계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장막에 거한다 하셨으니 그런 축복을 허락해 주소서’ 하는 기도를 드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멘 (믿습니다)’, ‘할렐루야’ 외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강의 성도님들이 하나님 앞에 서원기도하는 가운데 굳은 각오 결심 하게 해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립니다. 말씀 충만히 받기를 소원합니다. 은혜 충만, 성령 충만히 받기를 소원합니다. 믿음 충만해 지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허락해주시옵소서. 복잡한 사정과 어려움과 어둠 있는 가정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어두움아 물러갈지어다.

병든 가정에는 주님 마르지 않는 피 묻은 손으로 온몸에 안수, 안찰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질병아 달아날지어다. 모든 병의 아픔에서 해방을 입을지어다.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7년 4월 8일 주일 3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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