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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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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가, 그의, 그로, 그리하시니
 글쓴이 : 관리자
 
이사야 53:1-12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독일의 신학자 프란즈 델리취(Franz Delitzsch)는 “이사야 53장은 구약의 위대한 갈보리의 시요 노래”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신학자 캠벨 모건(Campbell Morgan)은 “이사야 53장에는 감히 형용키 어려운 영광이 떠올라서 찬란히 비추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그’라는 3인칭 단수 남성을 빠짐없이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이 당하신 수난을 수놓듯 그려 놓았습니다. ‘그는’, ‘그가’, ‘그의’, ‘그로’, ‘그 자신’이라는 말이 영어 성경에는 49회, 한글 개역성경에는 30회 기록됐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지리산에서 기도하며 이 말씀을 상고할 때 ‘그가’가 반복될 때마다 양심에 강한 채찍 소리가 아프게 울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 모진 채찍을 맞으실 때마다 “저들이 몰라서 그러니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간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낮아짐[卑下]’으로써 종이 되셨습니다. (이사야 53:1-3)
그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불신앙의 세계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이사야 53:1)
그는 세상에 와서 배척당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사야 53:2, 요한복음 1:45-46, 마태복음 2:22-23).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한복음 1:46)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싫어 버림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53:3). 사람들 세계에서 ‘절교’를 당한 것입니다.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않았고 (요한복음 1:11) 친척, 동족, 제사장, 장로, 서기관, 유사,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능욕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신바 됐습니다 (마태복음 20:18-28, 마가복음 10:32-34, 마태복음 26:67-68, 27:39-44, 이사야 49:7).
그는 간고(艱苦)를 많이 겪은 자, 고통의 사람, 슬픔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고통을 ‘체휼’하는 분, 즉 체험으로 아시고 긍휼히 여기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질고(疾苦)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사야 53:3).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신 분입니다 (마태복음 8:16-17).
그는 천대 받은 사람, 찔린 사람, 끌려가는 짐승, 심문당하는 죄수, 사망에 이르는 범죄자같이 여김 받으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그의 낮아짐과 종의 생애를 보여줍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죽기까지 낮추고 복종하셨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6-8).
그는 ‘대신 수난 받는 종’이었습니다 (이사야 53:4-8). 인류는 고난 충만한 생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가 죄로 망한 결과입니다. 땅이 인류의 범죄로 저주 받고 인간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창세기 3:17-19). 예수님과 십자가에 함께 달린 강도도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아 당연하지만 가운데 계신 예수님은 옳지 못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3:40-41). 우리와 달리 예수님은 죄를 범치 않았고 진실하고 정직한 분입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십니다 (히브리서 4:15). 그런데도 예수님의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묘실(墓室)이 강포한 자, 부자와 함께 되었습니다 (이사야 53:9). 우리의 대속(代贖)을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4:25).



이사야 53장은 예수님이 받으신 ‘대신 수난’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사야 53장은 ‘대신 수난의 원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리고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이사야 53:5). 그가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3, 고린도후서 5:21). 그의 수난은 모든 사람의 범죄 때문입니다 (로마서 3:24-26).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로마서 3:25).
‘대신 수난의 성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찔림’입니다. 찔림은 아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그의 양손과 발목이 못에 찔려 구멍이 났습니다. 그의 이마는 가시관에 찔려 피가 흘러내렸고 그의 염통은 창에 찔려 물과 피가 쏟아졌습니다 (요한복음 19:34).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獨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長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스가랴 12:10).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그를 찌른 자도 본다고 했습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요한계시록 1:7)
둘째, ‘상함과 징계’입니다 (이사야 53:5).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여 무리가 보고 놀랐습니다 (이사야 52:14). 제대로 끼니를 드시지 못하니 시장해서 상하였고, 매를 맞아 상하였고, 그의 마음은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맞으신 채찍은 사형수나 노예들에게 가하던 무서운 형벌입니다. 맞으면 피부가 찢어지고 살에 박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형벌을 당함으로써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5-6).
셋째, ‘입을 열지 못하는 벙어리 되심’입니다. 그는 곤욕을 당하여 괴로운 중에도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제물(祭物)은 죽는 것이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7). 거짓 증언과 오만가지 욕설로 정죄하고 비난해도, 빌라도와 헤롯왕의 심문을 받아도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12-14, 요한복음 19:9).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마태복음 27:14). 욕을 받으면서도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에게 다 부탁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입을 막은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다 이유와 핑계를 댑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다’고 잡아뗍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아무 이유도 대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유사 이래 오직 예수님만이 승리하셨습니다.
넷째, ‘끊어짐의 아픔’입니다. 세포가 끊어지고 핏줄이 끊어지고 힘줄이 끊어졌습니다. 산 자의 땅에서 끊어졌습니다 (이사야 53:8). 십자가에 달리셔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에게서도 끊어지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루시기 위해 모든 것에서 절교(絶交), 끊어짐을 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서,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와 제자에게서도 끊어지신 것입니다. 찔리고, 상하고, 벙어리가 되고, 끊어져 버리는, 이 지경은 바로 ‘죽는 지경’입니다. 예수님은 숨은 쉬시지만 완전히 죽는 지경에 처하신 것입니다. 
 


‘대신 수난’의 결과는 화목입니다.
그는 화목을 위한 수난의 종이었습니다 (이사야 53:5-8). 그가 당하신 ‘대신 수난’의 결과로 놀라운 축복이 따라 왔습니다. 길이 생긴 것입니다. 그분이 끊어짐으로써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는 구속사의 말씀을 받고 구속사의 뜻을 전하는 길이 찾아왔습니다. 참으로 신비스럽고 오묘한 일입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 불화(不和)했지만 예수님은 수난을 당함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이사야 53:5). 막힌 담을 십자가로 허시고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14-16). 또, ‘의에 대하여 사는 삶’이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24). 그리고 구속(救贖)과 변화와 선행이 찾아왔습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이사야 53:11).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2:14).
속죄 은총의 본질은 ‘화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아직 경건치 않을 때 (로마서 5:6)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당신과 화목케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5:8) , 그리고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을 때 (5:10) 화목의 역사를 하셨습니다.

화목의 역사를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로마서 5:5-8, 고린도후서 5:18-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고린도후서 5:19)
화목의 대상은 세상, 즉 죄인들입니다 (고린도후서 5:19, 요한복음 3:16, 에베소서 2: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화목의 요소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로마서 5:5, 고린도후서 5:18-19).
화목이 성립한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입니다. 화목제(和睦祭)의 제물로서, 이 세상의 죄를 진 아사셀 양으로서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레위기 16장, 요한복음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높고 높은 보좌에 계시는 창조의 주, 영광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그가 낮아진 종이 되셔서 대신 수난을 받으시고 화목을 싣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찾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믿음으로 그를 만나야 합니다. 그의 거룩한 수난의 형상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정돈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4:27).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는 많지만 그와 함께 고난에 동참할 자는 적습니다. 그와 함께 잔치에 참여하려는 자는 많지만 그와 함께 금식 기도하는 자는 적습니다. 그와 함께 기쁨을 누리고 같이 먹기를 원하는 자는 많지만 그와 함께 고난의 기름 가마에 몸을 내어주는 자는 적습니다. 그리스도의 기사(奇事)와 이적(異蹟)에 경탄하는 자는 많지만 기적의 내막을 새기며 십자가를 겸손히 따르는 자는 적습니다.
우리가 순수하게 주님을 따르고 섬긴다면 그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맑고 순결하며 그가 하는 일에 얼마나 큰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실상 우리가 설령 자신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른다 해도 주님의 수난과 역사에 비하면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큰 인내를 가진다 해도 굉장한 것은 아닙니다. 엄청난 지식을 가진다 해도 완전한 것은 못 됩니다. 큰 뜻과 뜨거운 경건심이 있을지라도 구원의 빙거(憑據)는 되지 못합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끝 날에 감당할 믿음의 분량이 있습니다. 자기 날이 가까울수록 그 분량의 양이 적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따르되 ‘끝까지’ 따라야 합니다. 은혜받는 일, 기도하는 일, 말씀 듣는 일, 주님을 생각하는 일에 단 한순간도 마음에 끊어짐이 없어야 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에게는 십자가를 지고 따름이 영예요, 자랑이요, 면류관이어야 합니다.
수난의 십자가에 우리의 구원의 생명이 있고 우리의 행복과 힘과 용기, 가족들을 거느리는 축복된 역사가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현장을 보려고 구태여 이스라엘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 십자가는 바로 우리 가운데,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과거에서 찾아서도 안 됩니다. 과거에 교회 봉사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했다고 자랑할 필요 없습니다. 십자가는 현재 이 시간입니다. 지금 내 마음 속에 솟아있는 골고다 언덕, 우리의 현실 위에 주님의 십자가는 높이 서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나의 생애가 십자가가 있는 삶이었고, 십자가가 있는 가정이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처럼 “당신의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당신의 상함은 나의 죄악 때문입니다. 당신의 징계 받음은 나에게 화평을 실어다 주었습니다. 당신의 맞은 채찍 때문에 나에게 회복이 왔습니다. 당신의 괴로움 때문에 나에게 즐거움이 오고, 당신이 끌려갔기 때문에 나에게 자유가 왔고, 당신의 끊어짐 때문에 나의 죄에서 석방이 되고, 당신이 겪은 질고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영접을 받았습니다.”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끝까지 주님의 아가페 사랑을 잊지 않고 눈 뜨나  감으나 주의 십자가의 뜨거운 사랑을 마음 뜨겁게, 가슴 아프게 느끼면서 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불과 며칠 전 ‘호산나’ 외치던 환호성이 아직도 주님의 귓가에 맴도는데,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끌려가는 주의 거룩하고도 처참한 모습을 봅니다. 양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우주를 메고 가신 그 언덕길, 배반의 아우성이 소나기처럼 쏟아집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나님, 우리의 마지막 생애가 진실로 주님이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셨던 그런 사랑의 열매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올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엉뚱한데 가서 놀고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집으로 이사 갔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통해서 신,구약 말씀의 집에 다시 이사 올 수 있도록 출입의 은총을 내려주시옵소서. 먼저 마음의 이사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결심하고 주님과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주님 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가까운 데로 이사 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피 냄새, 땀 냄새 나고, 버림받고, 악취가 나는 곳이라도 좋사오니 마다하지 않고 주와 똑같이 살고, 주와 똑같이 가기를 원하는 우리 평강제일교회 전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늘 살아도 한 세기를 채 못살고 잠깐인데, 이 짧은 세상에서 허무한 데 종노릇 하는 게 아니라 영원한 세계, 영원한 집을 사모하면서 이 세상에 그냥 왔다가 갈 것이 아니라 신구약 말씀, 성경이 있는 데로 이사 가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은혜 가운데서 거룩한 밤, 말씀으로 좋은 꿈을 꾸는 밤이 되게 해주시고, 당신의 아들딸들이 끝까지 충성하고 불평불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감사가 차고 넘치는 복되고 행복한 마음으로 모든 일을 마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해 주실 줄 믿고 감사하면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4년 3월 25일 박윤식 원로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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