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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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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12시가 아니냐
 글쓴이 : 관리자
 
요한복음 11:1-27

십자가의 죽음을 얼마 안 남겨두고 있던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누이들로부터 급한 전갈을 들으셨습니다. 예루살렘 근교에 살던 나사로가 병으로 죽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병”이라고 하시면서 베다니로 가자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방금 유대인들이 돌로 쳐 죽이려고 했는데 또 그리로 가자는 말씀이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답변이 좀 엉뚱합니다.
“지금이 낮 12시가 아니냐. 밤에는 아무도 일할 수 없다. 빛이 있는 동안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하자.” 제자들은 도무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낮 12시는 표면적으로는 유대인들의 하루를 뜻합니다. 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12시간을 하루의 기준으로 생각하던 유대인들에게 정오는 하루를 의미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이면적 의미로 낮 12시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동안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2) 자연계의 태양이 비치는 동안을 낮이라 하듯 예수님이 이 땅에 머무시는 동안을 낮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라기 4:1-4, 요한복음 9:4-5). 예수님에게는 어두움이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려고 낮으로 오신 분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기간이 낮이며 (마태복음 24:14) 복음과 함께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입니다 (마태복음 5:14).

영적으로 어두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낮입니다. 설령 밤중이라도 그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는 자, 낮에 사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13:12, 요한계시록 21:25). 낮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순간 전 세계는 밤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이 뜻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낮, 그리고 빛의 세계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 낮 12시라’는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불과 6일 전에 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주어진 기회와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잠든 친구 나사로를 깨우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는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째, 썩어서 냄새가 나는 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든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간을 창조하고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시간의 주관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시간을 선용하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서 돌을 굴려 내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는 자들에게는 왜 우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면 사람에게는 죽음이 없는데 왜 우느냐는 뜻이었습니다 (로마서 6:23). 그러나 모두들 비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 오늘까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시면서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너라.” 외치셨습니다. 사망을 향해서는 호통이요, 나사로에게는 친부모같은 다정한 부름이었습니다. 그러자 수건에 싸이고 손발이 묶인 나사로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얼굴과 수족에 묶은 베를 풀어주고 다니게 하라고,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밤은 물러가고 예수님과 나사로가 낮 12시에 만난 사건입니다. 낮 12시를 만나기 전의 나사로는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낮 12시는 일어나 있는 시간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어두움의 영이 물러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낮 12시가 각자와 가정, 구역과 교회에 머무르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의심 없이 예수님을 믿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낮 12시입니다. 그런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원한 세계에 들어갑니다. 어둠에 다니는 자는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빛이 있을 동안 빛을 믿으면 빛의 아들이 됩니다 (요한복음 12:35-36). 그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합니다.




오늘까지 잘 믿지 못한 것을 다 청산하십시오. 지금은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말씀에서 떠나서는 안 됩니다. 나들이를 가든 사업하러 가든 영원히 빛 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어두움에 다니면 실족하게 돼 있습니다 (요한복음 11:10). 마음이 우울하고, 기도해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사업도 시원치 않으면 “하나님, 제가 낮 12시에 살고 있으니 원하시는 대로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십시오. 때가 낮이매 우리는 우리를 보내신 이의 일을 행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9:4). 참으로 귀한 말씀, 멋있는 말씀입니다.
개인의 종말, 우주적 종말, 세상 끝날의 심판이 오면 그때는 일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지금 할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처럼 사십시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신 동안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걸머지겠느냐?’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이 되겠느냐?’ 물으셨을 때 모두 ‘예’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심판 당하기 전 반시(半時) 동안 고요한 때를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8:1). 지금 권면의 말씀 주실 때가 낮 12시입니다. 예수님은 사명을 이루시는 일에 한 번도 우물쭈물 주저한 적이 없습니다. 내일로 미룬 적이 없습니다. 자기 유익을 조금도 계산하지 않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7-10). 온몸이 찢어지고 깨져도 잠잠하셨습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고, 때를 따라 기회를 붙잡으셨고, 모든 생활에 그림자 없는 정오로 살아가셨습니다. 동서남북이 다 빛이었습니다. 사명을 위해 흔들림 없이 담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32-33, 요한복음 5:17, 6:27). 나사로를 살리시기에 앞서서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을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사람은 해야 할 사명이 있는 동안에는 죽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의 개척자 리빙스턴은 “사명(使命)이 다할 때까지 죽지 않는 것이 생명 (生命)”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명을 가지고 살 때 수많은 장애물과 환난이 닥쳐도 하나님이 우리 생명을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우리 생명을 잘 싸주심으로써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십니다 (요한일서 5:18).



다윗은 왕이 되기 전 사울 왕의 추격을 받아 10년이나 도망 다녔습니다. 마지막에는 더 도망갈 곳도, 살 가망도 없었습니다. 가장 믿던 사무엘 선지자마저 세상을 떠나자 낙심천만해 일어서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통해 “다윗의 생명은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라고 안심시켜 주십니다. 장차 당신은 왕이 될 터이니 자신의 남편 나발 같은 악인의 생명을 빼앗는 일에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고, 그저 덕으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참으로 훌륭한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현명한 말이 한없이 고독하고 지쳤던 다윗에게 선지자의 말처럼 큰 위로가 돼서 넘어지는 그를 붙잡아 일으켰습니다. ‘생명싸개’는 값진 보화나 귀중한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감싸고 묶어뒀던 고대 근동의 풍습이었습니다. 히브리 원어로 ‘묶다, 싸매다’는 뜻으로 다발, 꾸러미, 보자기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끝까지 복음을 위해 일하고 헌신, 봉사할 때 생명싸개에 싸여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주 귀하고 특별한 보물처럼 싸셨으니 원수들이 아무리 해하려 해도 끝까지 보호받는다는 것입니다. 
평강제일교회는 낮 12시입니다. 대환란과 심판이 있어도 생명싸개 속에 있으면 낙심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믿는 대로 됩니다. 그 생명싸개 속에는 우리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사무엘상 25:29).



성도 여러분!
베다니는 ‘괴로움의 집’. ‘슬픔의 집’, ‘근심과 걱정의 집’ 이라는 뜻입니다. 인류의 삶을 누르고 있는 지구촌이 바로 베다니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가 병든 곳, 죽어 장사된 곳입니다. 인류의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사람을 눈물나게 합니다.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베다니 속에서 낮 12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낮 12시가 함께 하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밤을 물리치고 낮을 만드셨습니다 (요한복음 8:12, 9:5, 12:46). 순간순간마다 낮 12시의 기회를 붙잡으시고, 그 기회 앞에 감사하시고, 그 기회를 이용해서 잠든 나사로를 살리고, 웃음과 기쁨과 즐거움과 생명을 우리에게 넘겨주셨습니다. 그 결과 베다니에는 예수님을 위한 감사의 잔치가 벌어지고 온 이스라엘에 소망과 살맛을 가져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괴로움의 집 베다니가 즐거움의 집이 됐습니다. 죽음의 집을 부활, 생명, 영생의 집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가 인간의 죄를 사하셨으니, “내가 구속(救贖)했으니 염려 말라” 하시는 말씀에 “아멘” 하고 받는 순간, 우리의 삶이 낮 12시가 되어 생명싸개 속에, 그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14년 4월 27일 주일 2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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