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ㅣ SITEMAPㅣCONTACT US
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HOME > 생명의 양식  
 
   
죽음 앞에 선 인생
 글쓴이 : 관리자
 

열왕기상 2:1-4

모든 인생은 죽음 앞에 서 있습니다. 부자건 가난하건, 배웠건 못 배웠건 가리지 않습니다. 왕이라 해도 죽음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나는 빼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이겠거니.’ 생각하며 삽니다.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한 사람이 병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됐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방으로 조용히 들어와 말했습니다. “나는 죽음이라는 사람이요. 같이 갑시다.” 그가 놀라 소리쳤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자 ‘죽음’이 말했습니다. “그럼 좀 기다려주겠다. 다음에 올 때는 네가 놀라지 않도록 먼저 사신을 보내주지.”



‘죽음’이 소리도 없이 사라진 뒤 그는 건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뒤 노인이 됐습니다. 그때 수십 년 전 만난 ‘죽음’이 늙지도 않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니, 다시 올 때는 먼저 사신을 보내준다고 하지 않았소?” 그가 항의하자 ‘죽음’이 말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신을 보냈는데 그러느냐. 슬픔도 보냈고 괴로움도 보냈다. 사업 안 될 때 네가 짜증내던 것도 내가 보낸 것이고, 네가 늙어 허리 펴지 못하는 것도 내가 보낸 사신이다.” 노인은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죽음’을 따라 나섰습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교회 묘지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음을 증거하는 자들의 땅’. 죽음은 무엇보다 강력해서 누구도 정지시키거나 연기시킬 수 없다는 것이지요. 히브리서는 죽음에 대해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은 한 번 났다가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브리서 9:27)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행한 대로, 믿음대로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내세(來世)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이세상의 삶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죽음이 죄의 값이라고 말씀합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로마서 6:23). 그래서 우리가 율법 아래 있었을 때 죽음은 우리에게 저주이고 형벌이었습니다.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해방을 받았습니다.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죽음은 영광의 세계, 천국으로 가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죽음을 눈앞에 둔 다윗 왕이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말입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아들에게 국가 통치술이나 외교관계 비법을 전수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나 형제에 대한 유언을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아들을 권면(勸勉)했습니다. 말씀을 지키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 형통하지만 하나님을 저버리고 교만하면 하루아침에 망한다는 가르침을 남긴 것입니다. ‘죽는 자의 유언은 그의 일생의 거울이다.’라는 폴란드 격언이 있습니다. 다윗의 유언은 그가 지나온 험난하고 굴곡 많았던 70년 일생, 슬픔과 괴로움과 좋은 일과 나쁜 경험들을 다 담고 있는 값진 말씀입니다. 더 이상 값질 수 없는 유산입니다.



다윗은 죽음을 인식하고 준비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죽을 사(死)와 발음이 똑같다고 ‘4’자도 쓰기를 꺼립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길로 가게 되었으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는 죽지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약속대로 주가 오시면 구원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죽음을 인식하고 준비하는 사람’과 ‘죽음을 머리로는 알지만 인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로만 생각하는 사람’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베드로전서 1:17)고 가르칩니다. “인생은 아침 안개 같아 해만 뜨면 없어진다.”(야고보서 4:14)로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거(寓居)하는 자, 임시로 붙어 사는 사람”(역대상 29:15)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면 세상의 즐거움이 영원토록 계속될 걸로 착각하며 삽니다. 자신을 잊어버립니다. 성도는 자기를 찾아 말씀으로 자기를 건축해야 합니다(유다서 1:20).
죽음에 대한 인식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합니다(아모스 4:12). ‘죽음’이라는 두 글자를 통해서 말입니다. 죽음을 통해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한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 그는 죽음을 미래의 사건으로 인식하지 않고 ‘죽음은 바로 오늘이다.’, 즉 죽음을 날마다의 사건으로 인식한 사람입니다. 위대한 신앙입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대장부(大丈夫), 강하고 씩씩한 사나이를 뜻합니다(민수기 13:33, 사무엘상 4:9, 욥기38:3). 죽음을 눈앞에 둔 모세도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나와 같이 있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신명기 31:6-7, 여호수아 1:1-9)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형들보다 어리고 유약해 보였던 솔로몬은 대장부답게 하나님 말씀을 믿고 아버지의 유언대로 행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그를 나약하게 봤던 백성들이 모두 추앙하고 안심할 정도로 정치를 잘했습니다. 우리가 솔로몬 같은 신앙의 대장부가 되는 길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의(義)의 길에 서면 사자같이 담대해집니다(잠언 28:1).
둘째, 믿음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말씀에 굳게 서야 합니다. 말씀 속에 들어가서 서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흥왕(興旺)하며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합니다. 용기를 주고 지혜와 명철과 지식을 줍니다.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다 줍니다.
넷째, 사람보다 강하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고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나가도 들어와도 형통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보다 낫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25, 27). 실상 하나님에게 ‘미련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도 깨닫지 못하니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해지고 마음이 굳건해져야 합니다. 모든 일을 계획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라.”고 유언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열왕기상 2:3)
이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강한 능력을 체험하십시오.
다윗은 믿음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말씀의 사람입니다. 다윗 왕은 자기 지혜와 능력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말씀을 붙잡는 데서 나왔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지혜로운 통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교만하지 않고 늘 겸손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함께하는 것이 생명이고 권세이고 능력임을 늘 마음에 뒀습니다. 베들레헴의 목동에 지나지 않던 자신이 이스라엘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의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시고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사무엘상 16:7, 사도행전 13:22). 여러분의 중심도 그 나라 갈 때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받는 데서 이탈하지 말고, 변함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우리에게 찌르는 가시가 되고 때리는 채찍이 됩니다(전도서 12:11). 그래서 사람들은 말씀을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이 선 어떤 검(劍)보다 더 예리해 우리의 영과 혼을 찔러 쪼갭니다(히브리서 4:12). 세상의 어떤 칼도 사람의 영과 혼을 찌르지는 못합니다.
말씀은 하나님 자신입니다(요한복음 1:1). 말씀을 영접하면 바로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해집니다. 갈팡질팡 하다가도 말씀이 있으면 말씀이 확고하게 방향을 정해 줍니다.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세무궁토록 진리입니다. 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립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에 소망을 걸 만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말씀에 여러분의 생명을 거십시오. 말씀을 믿고 일한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손만대에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늘 머리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베드로전서 4:14).

모든 인류에게 죽음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린도전서 15:55).
“네가 나에게 찾아왔느냐. 네 이름이 무엇이냐. 사망이냐? 사망아, 나에게 와봐라.” 하고 외친 것입니다. 사망이 사도 바울을 보니 바울에게는 사망을 때려잡는 말씀의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망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않음을 입고 죽을 몸들이 불가불 죽지 않음을 입을 때 생명이 사망을 물 빨아들이듯 삼킨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53-54). 그래서 마지막 감췄던 은혜, 쌓아둔 은혜가 올 때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라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8:51)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우리의 원죄,유전죄, 자범죄를 단번에 사하십니다. 당신의 의를 선물로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해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십니다. 그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합니다.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주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고 주님의 영생이 내 영생인줄 알았으니 그 나라 갈 때까지 괴로우나 즐거우나 일편단심 예수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주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 봉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년 8월 29일 수요예배 설교


 
   
 




 
 
모든 개혁은 절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비운 절대 감사

주의 일에 더욱 강건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부르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기자

사랑은 다시 만나게 해주는 기쁨의 선…

하나님의 은총과 평강제일교회의 축…

마지막 판가름

하나님의 정확한 시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