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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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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제일교회의 큰 기쁨은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
 글쓴이 : 관리자
 

누가복음 15:1-32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행하신 거룩한 구속사(救贖史), 즉 전 인류를 위한 구원 역사의 기록입니다. 세계사, 즉 세상의 역사는 구속사 앞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보조의 역할을 합니다. 보이는 세계가 큰 흐름 속에 흘러가고 있듯이, 보이지 않는 구속사도 거대한 흐름 속에 도도하게 인류 구원을 위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죄악 된 우리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 있는 개인과 가정, 직장, 사업은 망하는 법입니다. 성경은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냐.”고 하십니다(욥기 4:7). 죄를 지을 때는 달콤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죄 값을 치르게 하십니다. 모르고 죄를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 지은 사람이 치러야 할 값은 사망입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에 들어갑니다(요한계시록 20:12-15).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나약한 인간들에게 거짓말을 하시겠습니까.
성경은 이런 우리들을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적, 그리고 한 가지 변함없는 진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도 서너 번 거듭 망나니짓을 하면 자
식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호적에서 빼버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둘도 없는 외아들 예수를 보내시고 우리 죄를 당신의 아들에게 전가(轉嫁)하셨습니다. 그 죄 값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끝났다면 인류에게는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원죄(原罪), 부모로부터 내려온 유전죄(遺傳罪), 알게 모르게 스스로 지은 자범죄(自犯罪)까지 단번에 사해 주시고 “죄 없다.”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속사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구속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절정을 이루고 예수님이 십자가의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써 완성됐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린도전서 1:30).

우리는 이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대가를 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가장 쉽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였습니다. 죄가 있으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믿고 망한 사람이 있으면 나를 걸어서 고소하라’고 하십니다. 아들딸이 잘 자라 좋은 직업을 갖고 좋은 사위, 며느리를 얻었다고 자랑하지만 얼마 못 가 집안이 기우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나와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교회는 죄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죄 많은 사람이 나와서 죄를 사함 받는 곳입니다. 때가 많은 사람이 목욕탕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성경을 주셨습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물질도 변합니다. 산천초목도 변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삼일 만에 변하고 조석(朝夕)간에도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함이 없습니다(히브리서 13:8) 만년 전이나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히브리서 1:12). 사람은 늙고 병듭니다. 나이 마흔만 넘으면 눈이 침침해지고 머리 지붕이 벗겨집니다. 다리가 하나 더 생깁니다. 지팡이 말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도 나이가 들면 볼품이 없어집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한 번 났다가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브리서 9:27). “천국이 어디 있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죽은 뒤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옥의 유황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거짓말 하는 것을 우습게 압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남의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무슨 무익한 말을 해도 네가 한 말로 심판 받고 정죄 받는다.”(마태복음 12:36-37)고 하셨습니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거든 혀를 금하라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남의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남의 얘기를 하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솔로몬 왕은 남의 얘기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를 피하라고 했습니다. 시편에서는 죄인의 길에 서지 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시편 1:1).



죄인 하나 찾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양 백 마리 가운데 한 마리를 잃어버린 목자, 돈 열 드라크마 가운데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 그리고 자식 둘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린 아버지입니다. 잃어버린 인류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들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창녀, 세리, 죄인들과 대화하고 식사도 같이 했습니다. 그러자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너희 선생은 왜 믿지 않는 자들과 음식을 같이 먹느냐?” 그러자 예수님께서 비유로 본문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백 마리 양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리면 찾지 않겠느냐. 부인네들이 집에서 동전 하나 잃어버렸다면 비를 들고 등불 켜고 찾지 않겠느냐. 아들 둘 가운데 하나가 나갔다면 부모가 찾지 않겠느냐?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옷 잘 입고 돈 많고 권력과 명예가 있는 사람 앞에 굽신댑니다. 아들딸이 보잘 것 없는 집 아이들과 사귀면 “친구가 그렇게 없느냐”고 못마땅해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 하나를 찾기 위해서 애쓰셨습니다. 하나에 집중하셨습니다. 아무리 거액의 돈이라도 셀 때는 하나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큰 수도 기본단위는 하나입니다. 하나가 시작이고 진행이고 마침입니다. 하나의 귀중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집에 있는 자식이 아니라 나간 자식이 돌아오는 것에 집중돼 있었습니다(누가복음 15:10).
기생과 먹고 마시며 재산을 탕진하고 상거지가 돼서 돌아왔는데도 고맙고 반가와서 살찐 송아지를 잡고 동네 사람 불러다가 잔치를 벌였습니다. 집에 있던 큰 아들이 불평하자 “야, 내 것이 네 것이 아니냐. 네 동생은 잃어버린 자식, 죽었던 자식이야. 회개하고 돌아왔는데 내가 아비로서 기뻐하지 않겠느냐?” 하고 책망했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은 목자는 즐거워 어깨에 메고 돌아와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였습니다(누가복음 15:7). 양 한 마리 값보다 잔치 비용이 더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잃어버린 하나를 찾은 것을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새 생명의 축제를 맞고 있습니다. 한 영혼이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가정을 도와 주시면 급속도로 형통의 복, 부요의 복을 받습니다. 오늘 평강제일교회에 등록한 한 사람은 평강제일교회 전체의 시작입니다. 우리 교회는 권력과 명예와 돈이 있는 사람만 환영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대통령의 영혼이나 거지의 영혼이나 인격은 똑같습니다. 차별해선 안 됩니다. 백 마리 양도 한 마리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을 창조하실 수 있지만 시작할 때 단 하나로 시작하셨습니다.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裕餘)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말라기 2:15)

세상 끝날은 노아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노아 시대는 사람이 육체가 된 시대였습니다(창세기 6:3). 사람들이 자기 눈에 맞는 이성(異性)만 찾아 헤매다 썩은 고깃덩어리가 됐습니다. 하나님이 괘씸하게 여기시고 이제부터 사람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아담의 10대손 노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습니다(창세기 6:8).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끝날에도 이와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돈, 인기, 지위, 명예만 추구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은 그 가정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자식들에게 몇 억, 몇 십 억을 물려주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전수해 보십시오. 자식들이 복에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볼품없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가실 때 소경 거지가 앉아 동냥하고 있었습니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 된 것이 자기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답하셨습니다. “자기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다.”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한 사람, 그 사람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없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마음이 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많이 회개해야 합니다. 저는 은혜 받은 뒤로 동냥하는 사람에게 천원을 준 적이 없습니다. 늘 만 원입니다. 천 원으로는 짜장면 한 그릇도 사 먹을 수 없습니다. 동냥하는 사람이지만 그분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 대접하듯이 이웃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아무리 초라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실족하게 하고 실망시켜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야, 내가 저분 때문에 이 세상에 왔어! 내 이름으로 믿겠다는데 왜 네가 저분을 실망시키느냐” 하고 책망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小者)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태복음 18:6)

오늘 평강제일교회는 남을 실망시키지 않는 교회, 대통령 인격이나 걸인의 인격이나 똑같이 여기는 교회가 돼서 이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교회가 돼야 합니다. 돈 일전을 우습게 여기면 일전 때문에 피눈물 날 때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신 완전수가 하나입니다. 가족 가운데 하나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면 모든 가족의 마음이 그 하나에 집중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5:17)고 했습니다. 새 생명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까. “하나님, 깨닫지 못한 분들이 이번 축제를 통해 교회에 나올 때 영원히 자손만대에 예수를 믿고 복 받는 가정 되게 해주십시오.”하고 눈물 흘리며 금식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는 노심초사 자식을 위해 걱정합니다. 아들딸을 잃어버렸는데 밥이 입에 들어가겠습니까. 아들딸을 못 찾았는데 갈비 사다가 구워서 진수성찬 차려 먹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교회는 선한 목자(牧者)의 정신, 희생정신으로 잃어버린 양을 찾아야 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한복음 10:11)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 없는 양은 제 힘으로 살 수 없습니다. 나간 자식을 찾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잃어버린 자를 찾아야 합니다. 돈을 잃어버린 여인이 불을 켜고 비를 쓸면서 돈을 찾듯이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자를 다 찾아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습니다. 모든 일에 만사형통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봐도 즐겁고 아내가 남편을 봐도 즐겁고 부모가 자식을 봐도, 자식이 부모를 봐도 즐거운 가정이 됩니다. 우리 가정이 복 받고 대한민국이 복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는 한 형제입니다. 인류를 창조하실 때 아담 하나를 지으셨습니다. 아담 하나에서 우리가 다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들을 찾아오는 목자가 돼야 합니다. 하나에 대한 주님의 뜨거운 관심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의 인격이 하나님의 인격입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합니다(마태복음 16:27). 하나의 인격에 집중해서 찾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마다, 구역마다 잔치를 벌여야 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메고 돌아오는 목자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녀석아, 너 잃어버리는 바람에 잠을 못 잤다.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서 너를 찾았구나.” 한 마리인데도 그렇게 기뻐했습니다. 집 나갔던 탕자가 돌아와서 “죄 짓고 돌아온 저를 머슴처럼 대해 주십시오.” 할 때 “무슨 소리냐. 너는 내 아들이다.”하며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새 신을 신기고 춤추며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평강제일교회 모든 성도가 그런 심정으로 새 식구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는 전체의 시작입니다. 하나는 천하보다 귀합니다. 하나는 평강제일교회의 진행이요, 마침입니다. 새 식구가 옴으로써 하나님 앞에 마침이 되는 산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년 5월 13일 주일 2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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