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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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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글쓴이 : 관리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1-11



인류의 시조 아담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에게서 떠났습니다. 인류는 죄 때문에 부서졌습니다.
죄 지은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죄 없이 망하는 자는 없습니다(욥기 4:7). 죄는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지은 아담을 그대로 놓아두시지 않고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9).

구속사적 부르심입니다. 용서와 구속(救贖)을 담은 감동적인 사랑의 첫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짓든 먼저 찾아와 부르시는 부르심입니다. 깊은 호의를 가지고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부르는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을 들은 자는 살아납니다(요한복음 5:24-25).
원래 아담은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던 존재였습니다(창세기 2:25).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존재였습니다. 잠깐 살다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부끄러워졌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하체를 가렸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불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아담을 지으신 뒤 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6-17) 여자는 아직 창조받기 전입니다. 아담은 여자에게도 하나님의 명령을 철두철미하게 가르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선악과를 먼저 따 먹고 만 것입니다.



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에덴동산에 뱀이 들어올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세기 3:1)
간교하고 요사스런 존재입니다. 이리 저리 둘러댑니다. 당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간교하다.’는 히브리 원어로 ‘거짓말하는데 영리하다.’는 뜻입니다. 눈 깜짝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합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능수능란하게 죄를 짓습니다. 진실이라고는 조금도 없습니다. 씹지도 않고 먹이를 삼켜버립니다. 뱀은 온몸이 미끄럽습니다. 조그만 구멍만 있으면 뚫고 들어갑니다. 뱀은 사탄을 상징합니다(요한계시록 12:9, 20:2). 우리도 작은 빈틈만 있으면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에베소서 4:27)고 하셨습니다. 세상으로 향하는 빈틈을 메우지 못하면 결국은 죄를 짓습니다.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다서 1:20-21)

믿음으로 자기 집 하나 짓지 못하면 언젠가는 춥고 감기 들고 병들게 됩니다(에베소서 2:21-22).

아담과 하와가 빈틈없이 지켰다면 뱀이 그들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안의 모든 과일을 따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고 하와를 떠봤을 때 “네가 무슨 상관이냐. 하나님과 우리와의 언약이 아니냐. 네가 왜 간섭하느냐. 알고 싶으면 하나님께 물어보라.”고 대답했다면 끝났을 것입니다. 사탄이 여우처럼 말을 걸어올 때 말을 섞다가는 결국 넘어가고 맙니다.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택하였구나.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너를 쳐서 증거하느니라.”(욥기 15:5-6)

하와가 죄를 지을 때 아담은 어디 있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獨處)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8)

‘돕는 배필’은 ‘일을 거들 짝’(공동번역 성경),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표준새번역 성경)입니다. 히브리 원어로는 ‘눈앞에 마주 대하는 자로서 도움을 주는 자’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눈앞에서 놓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늘 눈을 맞추며 함께 있었어야 했습니다. 여자는 아담 곁에 꼭 붙어 있으며 도움을 주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가 창조 받은 이유이고 절대 사명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와가 뱀과 말할 때 아담은 대체 어디 있었단 말입니까. 뱀은 하와가 혼자있는 틈을 노려 접근했습니다. 하와가 뱀과 대화하는 순간은 이미 독을 먹는 순간이었습니다.
뱀이 알고 있는 ‘동산 모든 나무’ 가운데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신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하와가 누설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자리에는 앉지도 말아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편 1:1)



결국 뱀은 하나님과 사람이 언약한 비밀을 알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따먹으면 죽는다.” 하셨지만 뱀은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다.”라고 유혹했습니다. 하와가 뱀의 말을 들은 뒤 선악과를 보니 전과는 달랐습니다. 죄는 눈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선악과가 먹음직해 보였습니다(창세기 3:6). 군침이 돌고 손이 갈 만큼 탐스러웠던 것입니다. 보암직도 했습니다(창세기 3:6). 보고 또 본 것입니다. 마음이 포로처럼 사로잡혔습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습니다(창세기 3:6). 탐심이 생긴 것입니다. 안목(眼目)의 유혹을 받은 것입니다. ‘꼭 먹어야겠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보이지도 않게 됐습니다.
하와는 결국 선악과를 먹고 남편에게도 줬습니다. 남편에게 ‘선악과를 먹었지만 하나님 말씀처럼 내가 죽지 않았다.’고 했을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보다 여자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나니 순수한 마음, 순결한 생각이 사라지고 죄 짓는 능력이 밝아졌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셔도 나가지 못하고 나무 사이에 숨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죽지 않는다.’고 유혹했지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리지 못한 자는 죽고 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마태복음 5:27-28, 요한일서 2:15-17, 욥기 31:1, 베드로전서 2:11).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복음 5:28)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욥기 31: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잠언 23:31-32)

아담이 타락한 날은 언제일까요
장로교 창시자 존 칼빈은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바로 그날인 여섯째 날, 즉 금요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타락도 금요일이라고 본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한 마틴 루터는 아담과 하와가 여섯째 날 창조됐고 다음날인 안식일에 타락했다고 봤습니다. 정경(正經)에 포함되지 못한 위경(僞經) 에녹2서에는 아담이 지음받은 지 5시간 반 만에 타락했다고 기록했고 또 다른 위경 쥬빌리서는 7년 만에 타락했다고 했습니다.
많은 유대인 랍비들은 아담이 창조된 바로 그날에 선악과를 따먹고 추방됐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어디 있는지 몰라서 찾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져 불안과 공포와 수치에 떨고 있는 아담을 다시 불러주신 것입니다. 기대하고 사랑하고 희생하면서 기른 자식이 거짓말을 해서 집안 살림을 빼내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의 마음은 무너져 내립니다.
소망이 한 순간에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다 아십니다(마태복음 9:4, 누가복음 6:8, 요한복음 2:24-25, 예레미야 11:20, 17:10, 21:12, 사무엘상 16:7, 시편 7:9, 11:5, 139:1).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도 가시방석에 앉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부르심은 “아담아, 내가 네 안에 있어야 되겠다. 너는 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다. 나를 떠나서는 너는 살지 못한다. 내 마음에서 너를 사랑하는 것을 아무도 끊지 못한다.”(요한복음 15장)는 선언입니다. 그 선언 앞에 도전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숨은 죄까지 다 찾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한복음 3:16)’ 라는 말씀은 최고봉의 사랑을 담은 말씀입니다.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처참하게 죽이기까지 하면서 인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죄 지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먼저 사랑’, 그 사랑을 알아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도 “우리 가정을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드리는 기도를 드려 보십시오. 즉시 응답받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한일서 4:10)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한일서 4:19)

하나님의 사랑 앞에는 죽음의 그림자도 다 날아갑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 예수님은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받으십니다(이사야 63:9).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걸어가신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원수도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의 앞길을 망치고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원수까지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주리면 먹이고 추위에 떨면 옷을 주라고 하십니다. 심지어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라고 하십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악한 마음, 남을 싫어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다 정리해서 하나님 앞에 내놓으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네 대신 심판하겠다.(로마서 2:6)” 하십니다.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행복해도, 아무리 불행해도 인생은 70-80년입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고 영원한 세계가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다. 나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골로새서 2:2-3).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받습니다(시편 146:5). 지금까지 사방으로 다니며 애썼어도 고생만 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형통합니다. 나가도 들어와도 복을 받습니다(시편 121:8, 신명기 28:6-7). 과거에 모르고 지었던 죄는 하나님께 맡기고 회개하면 해결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어디 가든 성경을 가지고 다니십시오. 읽고 기도하면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물질에 유혹받고 이성(異性)에 유혹당할 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생각하십시오. 먼저는 우리 가정이 천국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족의 하나님입니다. 가정이 건전하게 서야 나라가 건전하게 섭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라가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애국가 가사조차 모릅니다. 학교에서는 조국의 현대사도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나라 백성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죄 짓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고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세계 1등 국가가 될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사망의 그림자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우리는 무덤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놓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이 원하시는 뜻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예루살렘 주변을 산으로 두르셨던 것처럼(시편 125:2) 우리의 들러리가 돼서 호위해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까지 어영부영 믿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쫓아오시면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구원했다. 너는 축복의 자식이다. 죽어도 살겠고 살아도 산다. 너는 영생의 자식이야.”하고 선언하십니다. 그 말씀을 잊지 않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음성은 오늘도 죄인들 마음속에 메아리 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성경 66권 전체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인류를 사랑한다는 말씀뿐입니다. 우리도 남을 미워하지 말고, 나보다 남을 더 존경하면서 피차 사랑으로 종노릇 하게 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고 근심 없는 복지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정치하는 위정자(爲政者)들을 붙잡아 주시고 선한 마음을 주셔서 나라와 민족에 보탬이 되고 백성들을 깊이 뜨겁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정치하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성령의 불담으로 강하게, 가정과 직장과 사업체를 지켜 주시옵소서. 선물로 주신 아들딸들 은혜 가운데 무럭무럭 자라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와 민족에 충성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산 역사가 있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죄 짓지 않게 하시고, 세상 떠난다 해도 영생 복락의 축복을 받는 산 역사가 모두에게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감사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2년 3월 18일 주일 2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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