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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장례를 기념하는 베다니의 잔치집처럼
 글쓴이 : 관리자
 

예수님의 장례를 기념하는

베다니의 잔치집처럼

요한복음 12:1-11



예수님은 공생애(公生涯) 3년 동안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베다니에 많이 들르셨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5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마을입니다. 지명의 뜻이 ‘괴로움의 집’, ‘슬픔의 집’, ‘눈물의 집’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종교적 본부 격인 예루살렘을 놓아두고 베다니로 발길을 돌리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메시아를 기다린다던 유대인들이 정작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안타깝고 슬펐겠습니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37) 하시며 우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결과로 AD 70년에는 로마가 쳐들어와 100만 명을 학살하는 모습을 미리 내다보셨습니다.

‘슬픔의 집’, 가난한 마을 베다니

날이 저물면 성 밖에 있던 사람도 성 안으로 들어오는 법인데 예수님은 거꾸로 예루살렘을 떠나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로 가셨습니다(마가복음 11:11, 19). 베다니에서조차 예수님은 식사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동네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수많은 건장한 제자들까지 데리고 있는 몸이었습니다. 재워 준 집에서 아침 걱정을 할까봐 잠깐 새우잠을 주무시고 아침 일찍 제자들을 재촉해 나오십니다. 그리고 시장하시니 무화과나무 열매가 있을까 하고 찾으시다가 찾지 못하시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마가복음 11:11-14, 마태복음 21:17). 모든 피조물의 주인, 창조주인 예수님께서 이런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베다니에는 나사로와 마리아, 마르다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남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얼마 전 베다니에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죽었던 나사로를 예수님이 살리신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자 “선생님이 여기 계셨으면 우리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하고 울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이고 생명이며 창조이고 역사이고 결과인 당신을 믿어주기만을 바라시는 예수님은 이미 돌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 지나 썩어서 냄새가 나던(요한복음 11:39) 나사로의 무덤에 가셔서 돌을 옮겨놓도록 명령하신 뒤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요한복음 11:43) 부르셨습니다. 사망에 묶여 있던 나사로가 베로 수족을 묶이고 수의를 입힌 그 모습 그대로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묶인 것을 풀어줘 걸어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보던 사람들이 다 기절할 정도였습니다. 이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유대 각지는 물론이고 헬라에서까지 나사로를 구경하러 왔습니다.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에게로만 몰리니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시기심이 폭발했습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기 시작했습니다(요한복음 12:9-11). 예수님을 숨기기만 해줘도 무거운 형에 처하겠다고 백성들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베다니에서의 마지막 잔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다니의 잔치집 사건은 이런 상황 속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1주일인 고난주간, 예수님은 낮이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고 저녁에는 성 밖으로 나오셔서 베다니에 머무셨습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요한복음 12:1-2)
생애 마지막 대접을 베다니에서 받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며칠 뒤면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어떻게 잡히시고 얼마나 처참한 고난을 받으실지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끝에 생선뼈나 쇠붙이가 붙어 있는 가죽 채찍에 온몸이 박히고 눈이 퉁퉁 부어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질을 당하는 고난, 그 모습을 미리 다 보시고 아시면서 베다니에 가셔서 잔치에 참석하신 것입니다.
잔치가 열린 곳은 문둥이 시몬의 집이었습니다(마태복음 26:6, 마가복음 14:3). 누구든 접촉하기를 꺼리는 나병 환자입니다. 여러분이라면 나병 환자의 집에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다면 가서 맛있게 드시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잠시 머무르기도 싫어하는 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같이 어울리고 음식을 드셨습니다. 예수님께 사랑받고 은총받은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해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가리켜 “그가 눈 먼 것이 자기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자기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그에게서 나타내고자 하심이다.”(요한복음 9:3)라고 하시면서 그의 눈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사람을 무시하고 정죄하고 입방정 떨기 일쑤입니다. 고향은 어디이며 학교는 어디 나왔는지 따지고 ‘저런 사람이 무슨 하나님 일에 도움이 되겠느냐’ 생각합니다. 끼리끼리 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교만하지 말고 우쭐대지 말고 무시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욕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욕하는 것과 같습니다(잠언 14:31, 17:5). 그래서 예수님은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마지막 잔치를 치르신 것입니다.



마리아가 깨트린 향유 옥합

그런데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순전한 나드 향유를 가져다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것입니다. 나드의 향유는 세계 최고의 향유입니다. 엄청난 고가(高價)입니다. 노동자의 1년 치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는 물건입니다. 어떻게 마련했는지 모를 귀한 물건을 가져와 주님의 발 앞에 깨뜨릴 때,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당할 고난은 생각도 못하던 몇몇 제자들은 가룟 유다에 동조해 “이렇게 비싼 향유를 300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을 줄 수 있을 텐데 왜 허비하느냐.”며 마리아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이 여자가 나에게 좋은 일을 했다. 내 장례식을 치러준 것이다.”라며 제자들을 제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걱정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말씀의 이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웬 장례식?’ 하며 뚱딴지 같은 소리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저 예수님 따라 다니면 대접 받고 끼니 걱정 없으니 따라다녔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고 떡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요한복음 6: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회계를 맡고 있던 가룟 유다는 헌금을 빼돌리는 도둑이었습니다(요한복음 12:6). 그런 가룟 유다가 마리아를 책망하니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 돈도 훔쳐가려는 것이 아니냐.’고 면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돈을 빼돌릴 수 있었던 유다는 예수님이 잡혀 가신다고 여러 번 예언하니 밥줄이 끊기게 생긴 데다 자신을 도둑이라고 책망까지 하자 마음이 상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즉시 나가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에게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거래를 하고 맙니다(마태복음 26:14-16).



“나를 많이 사랑하는 자가 많은 죄를 용서받는다.”

또 다른 시각에서 시험을 받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젊은 여자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기름을 붓고 울면서 머리카락을 풀어 젊은 남성인 예수님의 발을 닦은 것이 이상하게 보인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비난할 법한 풍경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서 초대한 시몬 조차도 의심을 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몬에게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향유는 고사하고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너는 내 발에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입을 맞추었다.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용서되었으니 이는 이 여자가 나를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7:40-50).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을 드릴 수 있는 사람만이 이웃을 위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닮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는 용서받았으면서도 동료는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를 드시면서 “너희가 너희 형제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마태복음 18:35)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여라.”(요한복음 13:34)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요한일서 4:7-8). 하나님에게는 원수가 없습니다. 죄 지은 사람에게도 죄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져주고 죄를 없이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마태복음 1:21, 요한일서 3:8).



우리가 열어드려야 할 베다니의 잔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순절(四旬節)을 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걸머지고 속죄양으로서 마지막 걸어가시는 길입니다. 올해 사순절은 2월 22일에 시작해 부활주일 전날인 4월 7일에 마칩니다. 사순절은 머리에 재를 뿌리고(사무엘하 13:19, 에스겔 27:30) 과거에 지었던 죄를 철두철미하게 회개하는 ‘재의 수요일’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지었던 모든 죄를 철저하게 회개해야 하는 기간이 사순절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40일’은 일관되게 고난과 괴로움, 심판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민족의 죄와 조상의 죄까지 걸머지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민족의 죄를 지고 기도해서 용서받은 것처럼 말입니다(다니엘서 9장). 예수님의 이름으로 조상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동안 제대로 기도하지 못한 것, 가정예배도 드리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회개의 기도가 있어야만 사순절을 마치고 맞을 부활절에 주님을 위해서 잔치를 열어 드릴 수 있습니다.
‘슬픔의 집’이었던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열렸듯이 우리도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받으면 어두웠던 우리 삶의 현장에서 잔치가 벌어집니다. 슬픔과 괴로움과 절망이 가득 찼던 곳에 소망이 생깁니다. 죽었던 자가 살아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눈물과 괴로움과 사망이 없어지니 잔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개인과 가정, 사업, 직장마다 괴롭고 슬프고 눈물겨운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말할 수 없는 답답한 사정들 천지입니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곳이 예수님이 안 계시면 다 베다니입니다. 눈물나고 슬프고 괴로우며 죽음밖에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다니가 아니면 가지 않으셨습니다. 슬픔의 마을 베다니에 찾아가셔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문둥이 시몬의 집에 찾아가 앉으셨습니다. 예수님만 찾아오시면 우리 가정과 직장, 사업체가 다 신령한 베다니가 됩니다. 모든 괴로움이 달아나고 눈물이 그칩니다. 목숨보다 더 귀한 외아들을 잃고 슬피 우는 나인성(城) 과부에게 예수께서 “울지 말라” 하시고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외아들이 살아났습니다. 과부의 사정이 너무 딱해 다 함께 울던 동네 전체가 잔치집으로 바뀌었습니다(누가복음 7:11-17). 무덤 같던 마을이 잔치집이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업에 실패하고 자녀가 속을 썩이고 아무 소망이 없어 보이지만 그 집이 잔치집으로 바뀐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번 사순절은 그러한 기간이 돼야 합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철두철미하게 회개하십시오. 죽은 나사로처럼 썩어 냄새를 풍기던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교회 봉사도 못하고, 마음에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구속사 시리즈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을 회개하십시오. 사순절에조차 주일은 물론이고 수요예배, 목요예배, 구역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엉터리 신앙입니다.
베다니 사람들처럼 마음을 다해 주님의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오. 인류의 죄를 걸머지시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 향유를 부어 위로해 드렸던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래서 부활절에 주님 모시고 우리 교회에서 큰 잔치를 벌일 때 전세계가 잔치의 소문과 향기를 듣고 다 달려오는 산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불통(不通)이었던 모든 것이 만사형통으로 바뀌고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 출입의 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1:39에 썩어서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향기를 토하지 못하고 거짓말하고 남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성경 읽지 않고, 찬송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말씀받을 때 집중적으로 하나님 말씀 놓칠까 봐 은혜를 구하면서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죄를 이번에 사순절 4월 7일까지 철두철미하게 회개하고, 2012년 4월 8일 부활절을 맞이할 때 베다니에서 잔치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중심으로 우리 평강제일교회가 큰 잔치를 벌이는 부활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정마다 어둠의 권세를 말씀의 권세와 능력으로 다 내쫓아 주시옵소서. 어둠이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영광이 가정마다 은혜로 충만, 충만하게 비춰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이 저희들 머리 위에 머물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경 볼 수 있는 은혜, 찬송할 수 있는 은혜, 기도할 수 있는 은혜, 구속사 시리즈를 만방에 전할 수 있는 은혜, 또한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역사가 저희들 마음 가운데 뜨겁게 있으므로 또 그 말씀을 전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 앞에 온전히 감사하고 거룩한 주일을 하나님 앞에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오늘 하루를 지켜주시옵소서. 모든 말씀에 감사하면서 빌고 원하올 때에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서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2년 2월 26일 주일 2부 예배 설교


○ 관련기사_ 내가 들은 이 말씀
http://old.champyungan.com/bbs/board.php?bo_table=5_3&wr_id=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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