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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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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열매의 소리를 들으면서
 글쓴이 : 관리자
 



열매에게 배우는 생활, 그것은 빛을 먹고 빛으로 자라서 빛으로 화하는 삶이다

1985년 11월호

말씀의 성도 여러분, 주 안에서 안녕하십니까?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시던 무겁고 지루했던 죄악의 긴 밤을 어떻게 건너 뛰어, 오늘 이 영원한 십자가의 아침에 주렁주렁 빛의 열매로 섭리역사의 가지 끝에서 빛노래를 부르는 것입니까.
가을이 깊어갑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베푸신 가을의 만찬, 오곡백과 풍요로운 황금빛 산과 들은 하나님의 자기 진실의 표현이 아닙니까.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의 진실을 아름다운 열매로써 찬양하고 있는데, 인생들이여 인생에도 가을이 오고 인간 역사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오면, 역사의 타작마당에서 각자 '나는 알곡인 것인가, 쭉정이가 될 것인가?' 누구에게 물을 것 없이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하겠습니다. 결실의 가을은 성도의 심령 속에, 인간의 추수 때에 빛으로 열매 맺기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재촉이 아닙니까.
이 가을, 하나님이 인생에게 베푸신 계절의 만찬석에 놓인 풍요로운 오곡백과의 실상은 무엇입니까. 빛이 아닙니까. 햇빛과 달빛과 별빛과 빛의 산물인 비와 이슬과 바람을 알뜰살뜰하게 먹고 마신 빛의 표상이 오곡백과인 것입니다.
밀알 한 톨 속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들어있고, 그 알맹이 속에 계절을 빚어낸 빛이 깃들여 있어, 잠잠히 들여다보면 자연보다 더욱 참된 자연, 찬란한 빛의 얼굴이 거기에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만물이 빛을 먹고 마시는 일에 부족이 생기면, 그 결과 쭉정이가 되어 ‘없음’이 되고 마는 진리는, 하늘이 인생에게 친히 베푸시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으로 지음 받은 만물은, 계절의 운행 속에서 빛을 먹고 자라다가 마침내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이 ‘스스로 그런’ 자연의 참모습인 것입니다.

인간 역사의 가을, 거기는 영원무궁한 빛 자체이신 하나님의 실존이 온전히 나타나시는 무궁한 빛의 바다가 아니겠습니까.
어서 어둠을 벗고 빛으로... 가슴이 조여듭니다. 우리 인간의 본모습은 무엇입니까? 낳고 자라고 마침내 죽어가는 허무이겠습니까? 결단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간은 빛 이상의 빛으로 지음 받은 영원성을 가진 실존입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의 근본인 빛을 붙잡고 빛을 먹고 마시며 장성해서 마침내 빛으로 변화되어야 할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요한복음 1:9)을 모르면, 존귀에 처하나 자기의 존재 의미를 깨닫지를 못하니 멸망하는 짐승에 불과합니다.(시편 49:20)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복음 1:1-4)

만물의 실상은 빛입니다. 빛이 없으면 거기엔 아무 것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알고 보면 나 자신도 빛입니다. 빛을 먹고 마시고 빛을 타고 사는 그것이 참된 나인 것입니다. 인간이 빛을 외면함은, 곧 자기의 근본을 짓밟고 무시하는 것이고, 그 결과 사람은 살 수가 없고 자랄 수도 없고, 죽음이요 허무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 아래 인생 가운데, 영원한 빛의 열매가 되신 오직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곧 「참 빛이요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의 참 원형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배워야, 영원한 빛으로 열매 맺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는 하나님을 아는 빛이 머물러 있기 때문에(고린도후서 4:6) 사람은 그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빛에 부딪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빛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빛을 먹어야 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천래적(天來的-하늘에서 온)인 진실을 찾아 실천하며 옳은 것에만 익숙해지는 삶 속에서만 인간은 평안하고 자유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숙한 사람이란 곧 빛으로 익은 사람, 옳음에 익숙해진 사람입니다. 어린애라도 한번 젖맛을 알고 나면, 어떤 독재자의 힘으로도 그것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빛을 맛본 인간은, 그 사람을 죽인다 해도 그에게서 하늘이 준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내다보면서 예수님은, 「누가 내게서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요한복음 10:17-18)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빛으로 익은 영원한 참사람의 자리, 곧 ‘참된 나’의 모습인 것입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政事)할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풍을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을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이사야 32:1-2)라고 이사야 선지자가 노래했던 바로 그 사람을, 우리는 십자가에 처참하게 죽으신 예수님에게서 찾아 만납니다. 이 참 빛의 실상에 부딪칠 때, 인간은 비로소 눈이 감기지 않고 귀가 기울여지게 되고 딱딱하게 굳은 조급한 마음이 지식을 얻고 말더듬이는 총명을 얻어 말을 분명히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인생은 참 빛을 받아 어둠을 벗고 제 본래 모습대로 밝게 피어납니다. 영원을 밝히고 무한을 깨워 노래하게 하는 빛바다 속에서, 사람과 사람은 비로소 하나가 되고, 그 하나는 무한이 됩니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 인생에게 무서운 심판의 계절, 빈 쭉정이 가을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겠습니까?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이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니라.」(이사야 32:9-10)
인간이 빛이 아닌 어둠을 자리 삼고 사는 것,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둥지를 틀고 사는 자리, 자연 곧 ‘스스로 그런’ 세계를 외면하고 인위로 꾸민 자리에서 노닥거리는 그것이 곧 허무를 부르는 죽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역사의 가을, 인생의 결실기,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 곧 빛과 빛이 부딪치는 영원의 잔치 집에서, 자기의 본래인 빛을 외면한 죗값, 인간의 참된 양식인 하나님과 예수의 믿음을 먹고 마시지 않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무궁한 빛 앞에 서는 그날에, 「산아, 바위야,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요한계시록 6:16) 무섭고 영원한 고통이 평생에 어둠을 먹고 마신 보응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또한 심은 대로 거두는 자연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근본적인 죄와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빛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거스르고 본래를 짓밟는 그것입니다. ‘참된 나’는 빛이고 영원이고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주신 생명 그 자체만이 참 평안, 참 자유입니다. 이 나라 백성이 생명을 살리는 빛을 먹고 마시며(요한복음 6:54-55) 사람 노릇하는 것이 곧 평안이고 자유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십자가의 죽음을 내다보면서, 억조창생에게 참 평안을 선포하시는 영원한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곳에, 개인과 나라의 영생이 있습니다.
어서 이 나라 이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근심이 없고 두려움이 없이 참 평안 가운데 살기를 기도합시다.

박윤식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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